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강종구 바이오톡스텍 대표·충북대 수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신약개발의 실패는 새로운 성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1개의 신약개발의 성공율은 일만분의 일로 개발기간도 10년 이상 8∼15억 달러의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된다. 신약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도 실패로 사장되는 것들이 많다. 한시가 급한 코로나 상황이지만 짧은 기간 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잦은 바이러스의 변이로 맞춤형 치료제 개발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에 실패 또는 시장성 부족으로 개발이 중단됐지만 충분한 안전성과 선행데이터를 확보한 약물을 새로운 적응증으로 다시 허가받아 시판하고자 하는 약물재창출(Drug repurposing)이 시도되고 있다.

신약개발 도중 사장된 신약후보 물질만도 2000종이 넘고 파이프라인도 풍부해 개발기간이 짧고 개발비용도 저렴하고 성공률이 높은 약물 재창출 연구는 코로나19 치료제의 단기간 개발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현재 국내 코로나 임상 17건 중 8건이 약물재창출 약물로 에볼라바이러스 치료제로 개발된 렘데시비르, 에이즈 치료제 칼레트라도 그 예이다.

코로나-19 mRNA 백신으로 대박난 화이자사의 비아그라는 개발가치가 없어 화합물은행에 보관됐다가 다시 협심증 치료로 개발 중 발기부전에 효과가 확인돼 1998년 세계 최초 발기부전 치료제로 연 50억달러의 매출을 낸 약물이다. 이후 폐동맥 고혈압에 추가효과로 레바티오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됐으며 최근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임상시험 중이다.

1957년 탈리도마이드는 수면진정제와 임산부입덧제로 50개국에 시판된 후 8000명의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와 4000명의 영아를 사망 시킨 인류사에 가장 큰 약화사건으로 1961년 판매 중단됐다. 이 비극의 약물은 2006년 셀젠사에서 약물구조를 약간 변경한 레블리미드로 재창출돼 다발성골수종 치료제로 재탄생하여 연 25억달러 매출을 내고 있다. 저주의 약물에서 천사의 약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미국의 머크사의 프로페시아(피나스테라이드)는 전립선비대치료제 임상시험 중 부작용으로 발모효과가 밝혀져 경구용 대머리치료제로 개발됐다. 화이자의 미녹시딜은 초기에는 고혈압치료제로 개발됐으나 현재는 경피용발모제로, GSK사의 자이밴은 우울증치료제로 개발 중 금연효과가 발견돼 금연치료제로, 릴리사의 엔트리브는 우울증 치료제를 복합요실금 치료제로, 릴리사의 젬자는 항바이러스제를 항암제로, 릴리사의 에비스타는 유방암치료제를 골다공증 치료제로 적응증을 변경해 성공했다. 이들 약물들은 개발 초기 낮은 효능과 부작용으로 폐기단계에서 새로운 적응증 발견으로 부작용을 줄이고 약효를 높인 약물재창출로 연 10억 달러 이상의 블록버스터 제품으로 대박 난 약물들이다.

코로나19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오미크론 확진이 절정에 이른 현재 백신보다 치료제의 역할이 커져 독감약처럼 쉽게 투약할 수 있는 경구용 치료제가 필요하다. 최근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가 승인되면서 백신과 경구용 치료제의 투트랙 전략으로 예방과 치료를 함께 진행하는 새로운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맞춰 약물재창출을 통한 빠르고 싸고 안전한 코로나 치료제 개발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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