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중원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전기공학과 교수

이종필 중원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전기공학과 교수

[동양일보]우리는 매순간 전기와 함께 하고 있다. 1879년 에디슨이 전기를 이용해 백열전구를 발명한 이후 전기는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됐고, 산업이 발달할수록 전기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커졌다. 만약 전기가 없다면 코로나19 시국에 중환자들을 살리기 위한 음압병동 운영도, 그리고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드론,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을 대표하는 수많은 산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예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한 전기를 전국에 공급하고 있는 한전이 사상최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은 지난 5월 13일, 올해 1분기에 약 8조원 가량의 영업적자를 봤다고 발표했다. 이는 역대 최대의 적자폭을 기록한 지난해의 5조 9천억이라는 영업손실을 단 1분기만에 2조원이나 초과한 것이다. 한전의 영업손실이 급증한 것은 석유, 석탄, LNG등의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있는데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연초부터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까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한전의 원가인상 요인에 상당부분 영향을 주고 있다.

한전이 발전회사로부터 전기를 구입하는 가격인 전력도매가격(SMP)은 지난 4월 kWh당 202원을 넘었다. 1년 전보다 2.5배로 급등한 수치이다. 반면에 한전이 판매한 전력판매단가는 115원에 불과하다. 급격히 오른 원가를 전기요금에 적기 반영하지 못해 한전이 전기를 팔면 팔수록 더 손해를 보는 구조로 1년 가까이 끌고 왔던 셈이다.

이미 한전은 2021년부터 연료비의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도 연동되는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한 서민경제 부담 경감과 물가안정을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했다. 올해 4월, 10월 두 차례에 걸쳐 kWh당 6.9원, 4.9원씩 차례로 인상하기로 결정했지만 인상폭이 미미한 수치여서 적자를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들은 지난해부터 요금조정 요인을 주기적으로 반영, 인상을 단행하였다. 2021년부터 올해 초까지 스페인은 87%, 이탈리아 55%, 영국 54%, 일본은 35% 정도의 요금을 인상해 원가에 맞춰 전기요금을 현실화 했다. 그러나 전기요금이 OECD 26개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우리나라는 오히려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못해 영업손실액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는 사용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고 소비하는 ‘재화’다. 모든 사람이 대가없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니란 얘기다. 지난 30년간 생필품가격은 10배 이상 올랐지만 연료를 대부분 수입해 판매하는 전기요금은 2배도 채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전력소비가 늘어 2019년 기준 다른 선진국보다 전력소비 원단위 가격이 두 배 정도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력소비 원단위가 높을수록 전력소비가 증가하고 소비효율이 낮다는 것인데, 주 원인은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가격신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에너지가격의 상승 여부를 절실히 느끼지 못해 생긴 일이다.

한전은 생산된 전력을 발전회사로부터 구입해 한전이 보유한 송전 및 배전망 등 전력망을 통해 판매하는 회사다. 그리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송배전 전력망을 구축하고 유지보수를 하는 등 국가의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원가연계형 요금제도가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고, 전기설비 신설과 유지보수에 제대로 투자 하지 못해 전기를 적기에 공급하지 못하게 되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들의 장기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더 늦지 않게 전기요금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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