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석준 기자]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약 4%로 높아진 상태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까지 6%대로 확인되면서, 한국은행의 다음 주 기준금리 인상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한은이 0.25%포인트(p)만 올릴지, 강력한 물가 억제와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 등을 고려해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을지에 쏠리고 있다. 약 24년 만에 가장 높아진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이 사상 첫 빅 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급격한 금리 상승에 따른 서민·기업의 이자 부담과 소비 위축, 경기 침체 우려를 근거로 0.25%포인트 인상을 예상하는 의견도 여전히 많다.

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월 소비자물가지수(108.22)는 국제 원자재·곡물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6.0% 뛰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올해 3월(4.1%)과 4월(4.8%) 4%대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월(5.4%) 5%대로 올라서더니 지난달 6%대에 이르렀다. 물가 관리를 제 1목표로 삼는 한은 입장에선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으로,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한은은 물가 오름세가 하반기로 갈수록 더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공급과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이 모두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서, 당분간 5%를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가공식품·외식 물가 오름폭 확대로 5월(5.4%)보다 높아지고, 하반기에도 원유·곡물 등을 중심으로 해외 공급요인 영향이 이어져 상반기보다 오름폭이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급등기인 2008년의 4.7%를 넘어설 가능성까지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앞으로 1년의 물가 상승률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빠른 속도로 높아지는 점도 한은을 빅 스텝을 비롯한 기준금리 인상 쪽으로 내몰고 있다.

한은의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5월(3.3%)보다 0.6%포인트나 올랐다. 이는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고 0.6%포인트 상승 폭은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기록이다. 이처럼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 경제주체들은 전망에 따라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높여 물가 상승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임금 인상 압력도 커지고, 임금이 오르면 그 수준에 맞춰 가격도 또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한 단계 높아진 물가가 다시 떨어지지 않고 굳어질 수도 있다. 한은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더 높아지는 '금리 역전'이 임박한 점도 기준금리 인상 전망의 주요 근거로 거론된다.

현재 한국(1.75%)과 미국(1.50∼1.75%)의 기준금리 격차는 0.00∼0.25%포인트인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오는 13일 0.25%포인트만 올리고 미국이 빅 스텝을 밟으면 0.00∼0.25%포인트의 역전을 피할 수 없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 수준이 미국보다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물건이라도 더 많은 원화를 주고 수입해야 하는 만큼, 수입 물가 상승이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시장에선 이런 6%대 물가 상승률, 4%에 근접한 기대인플레이션 등을 바탕으로 이달 빅 스텝을 점치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다.

KB증권은 이날 통계청 발표 뒤 낸 보고서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가운데, 물가 상승세도 가팔라지고 있다"며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핵심 소비자물가도 4.4% 오르면서 상승률이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수요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도 높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7월 한은의 빅 스텝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며 "물가 상승률과 기대인플레이션이 함께 오르는 국면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선제 대응이자 금융 시장 안정 조치로 현실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 역시 "한은이 7월 빅 스텝에 이어 8·10·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추가 인상해 (한국의) 연말 기준금리가 3.0%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한은이 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관리에만 초점을 맞춰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할 경우, 체감 경기는 더 나빠지고 소비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아 경기가 가라앉을 우려가 있다.

이 총재도 지난달 21일 "6월 물가 상승률이 6%대로 나오면 빅 스텝 가능성이 있나"라는 질문에 "빅 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물가가 올랐을 때 우리 경기나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봐야 한다"며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변동금리부 채권이 많기 때문에,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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