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ESI 교장

한희송 ESI 교장

[동양일보]서양사의 시대구분에 있어서 역사시대의 초기를 특정하여 “고전고대(Classical Antiquity)라고 부른다. 호메로스부터 서로마멸망까지를 일컫는 이 시대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을 통합한 오리엔트 문명이 페니키아지방에서 그리스문명의 거름으로 쓰인 후를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페니키아의 공주 유로파(Europa)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가 ‘소’라는 동물로 변신한 뒤 그녀를 등에 태워 크레타섬으로 갔다 한다. 이것이 “유럽”이라는 지명의 유래이며 유럽문명이 오리엔트로부터 왔다는 증거이다.

호메로스는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라는 장편서사시를 손으로 기록함으로써 역사 자체를 문자의 시대 안으로 끌어들였다. 일리야(그리스어로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의 전쟁은 인간의 모든 일이 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고대인의 생각을 바탕으로 이후의 인간의 삶에 현실적 바탕이 되는 정보들을 책의 구석마다 새겼다. 이는 지중해에 대한 지배권이 이전보다 중요해졌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상업은 이미 고대부터 인간이 체득한 부의 축적방법이며, 그리고 문명의 과실(果實)이 이러한 흐름의 주도권을 쥔 사람들의 영향력 안에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호메로스의 시대로부터 300여년이 흐르자 우리나라의 성읍국가(城邑國家)에 비견할 만한 ‘폴리스(polis)’라는 도시국가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각각의 존재감을 과시할 정도가 되어갔다. 소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에서는 동양적 정치특징들을 이미 완성해 가며 제국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세력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신화적 환경을 벗어나서 인간의 이야기로 이를 기록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를 탄생시켰다. ‘밀티아데스’를 명장(名將)의 대열에 올린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전투와 현재의 마라톤 경주의 근원이 된 피이디피데스(Pheidippides)의 역주(力走)는 지워지지 않는 문화적 장면이 되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그리스의 승리로 이끈 주역은 ‘아테네’라는 도시국가였다. 전쟁과 경쟁이 크면 클수록 그 승자가 누리게 될 권력과 부 또한 그에 비례하는 것이 상례(常例)이다. 그리스 전역을 이끄는 자리는 다른 도시국가들의 열정의 대상이 되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도리스동맹(Dorian League)’은 곧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국가들을 동맹으로 뭉치게 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렇게 이끌려 왔다.

아테네를 이긴 스파르타는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역사에 여러 흔적을 남길만한 체계와 체제를 만들고 유지해야 했다. 그리스 본토 세력들은 보에티아(Boeotia) 지방을 중심으로 훗날을 도모했고 그 중심에는 당연하게도 ‘테베(Thebe)’가 있었다.

스파르타는 자신의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펠로폰네소스가 아닌 보에티아의 영역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스 문명이 지나간 곳에서 ‘테베’란 이름을 가진 동네들은 주먹자랑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를 요구한다. 이집트의 ‘테베의 왕자들’은 아멘호테프, 투탕카멘, 람세스 등의 이름으로 인기를 보장받고 있다. 테베가 보에티아의 중심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에파미논다스’는 보에티아 동맹국을 이끌었다. 밀티아데스가 마라톤 전투에서 보여준 이후로 우리의 이순신장군께서 명량해전에서 사용한 진법은 적들이 가운데로 전진하며 스스로 포위망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약간 변형한 진법으로 테베는 스파르타의 중장병이 만든 막강한 팔랑크스(phalanx)를 무력화시켰다. 기원전 371년 7월 6일의 일이다. ‘무적’이란 수식어로 불리던 스파르타의 군진(軍陣)은 스파르타라는 도시국가의 이름과 함께 역사에서 다시는 위협적인 존재로 일어서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역사의 주인공이 되려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일어나게 만든 원인을 논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쌓는 일은 어렵게 생각한다. 문화, 즉 지식을 정신적 그리고 물리적 형상으로 구체화하는 교육적 환경이 이룬 결과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교육은 외면적으로는 작은 일일지라도 크게 해석할 줄 아는 지식의 토대를 의미한다. 이를 잊는 순간 스파르타의 밀집대형처럼 소멸해가는 존재로 국민들은 시대를 살게된다. 이런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될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원하는 ‘개혁’은 형식적 변화로부터 눈을 돌려야만 찾을 수 있다. 레우크트라 전투를 앞에 둔 에파미논다스의 눈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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