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사)기생생물세계은행 이사장·충북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뉴밀레니엄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나타난 학문적 성과의 하나는 기생충을 인류의 질병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기생충이 퇴치의 대상일 뿐 아니라 적극적 이용의 대상으로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기생충의 귀환’이라 일컫는다.

올해는 15차 세계기생충학회 총회가 열린 해이다. 대회의 주제는 ‘기생충과 함께 살기’였다. 올 8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필자는 ‘기생충과 함께 살기: 보존과 이용’을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자원으로서 기생충의 가치를 일깨웠다.

올해는 필자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해가 될 것 같다. 덴마크 국제학회 후 우리 팀은 탄자니아로 이동해 ‘기생생물세계은행-세렝게티오송기지’ 현판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세렝게티 지역내 오송기지의 설립은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충북도의 첫걸음으로도 길이 기억될 것이다.

일찌기 필자는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탄자니아의 주혈흡충 퇴치활동을 하면서 한국-탄자니아 공동연구진과 함께 빅토리아호 유역 서른여섯 마을 주민과 학생의 기생충 역학 및 감염상을 샅샅이 현지 조사한 바 있다.

동료학자들과 함께 자동차에 현미경을 싣고 수도 다렛살람을 출발해 빅토리아호까지 먼 거리를 왕복하곤 했다. 세렝게티 초원을 자주 가로질러 다녔는데 어느 날 백수의 왕 사자를 보면서 생각했다. 저 야생동물의 뱃속에는 어떤 기생충이 있는 것일까?

문헌상 사자에는 19종의 기생충이 있다. 사람과 사자에 같이 감염되는 인수공통기생충도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세렝게티 사자의 활동무대는 마사이족과 같은 지역인 것으로도 유명하고, 이 안에는 천여종의 포유류가 함께 살고 있어 지구촌 생태계의 보고로도 유명하다.

세렝게티 에코시스템은 마사이 사람, 가축과 야생동물 다양성의 천국이고 이들과 함께 사는 기생충의 천국이기도 하다. 온갖 생물의 진화가 이 안에서 도도히 일어나고 있고 새로운 생물종이 생성 도태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2008년 이래 탄자니아 야생생물연구소 및 의학연구소와 협력해 사람과 동물의 기생충을 수집 보존하고 양자간 기술교류를 협약했을 뿐 아니라 연구원을 현지에 장기 파견함으로써 기생생물 자원개발에 관한 활동을 계속 해왔다.

2020년부터 ㈜코쿤 및 터보와 협력해 한국국제협력단 지원으로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 사업(IBS)도 공동진행하고 있다. 기생생물 전문인력을 기르기 위한 이 프로그램은 소코이네대학을 기반으로 올해부터 전문인력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한편 충북도는 사람과 동물의 질환이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인식하에 원헬스 베이스 캠프를 세렝게티 이곳에 함께 위치시킴으로써 앞으로 세계보건기구와 보조를 같이할 근거를 마련했다. 인류보건향상을 위해 범인류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문을 연 것이다.

이제 앞으로의 발전은 기생생물세계은행의 과학적 운영, 학술지 창간을 통한 세계 연합, 자원교류를 통한 상호이익증진과 국외 브랜칭과 네트워크의 형성, 합리적인 비즈니스 시스템 개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판단된다.

기생생물세계은행-세렝게티오송기지 현판식을 계기로 앞으로의 발전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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