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지난 수년동안 코로나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보건의료 등 무엇하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지구촌 깊숙이 침투하여 온갖 곳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소외열대병은 소외된 사람들에 더 많이 찾아 오는 감염병이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지리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병원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들을 위한 치료약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치료약은 있지만 치료약이 손에 닿지 않아서 죽거나 고통을 받는다. 이들은 외면 받은 사람들이고 치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즉, 지리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당시 회장이던 제임스 오빈스키는 수락연설에서 이름있는 제약회사의 보다 적극적인 공헌과 협조를 촉구하였다. 소외계층의 사람들은 치료약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치료약이 손에 닿지 않아 죽는 것이다.

‘소외열대병(-질환)’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대한기생충학회장을 하던 중에 정하여 쓰게 된 우리말 명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 및 진균증 약20종을 주요질환으로 꼽고 있으며 이 중 10가지를 중점 소외열대병으로 지정한 바 있고, 이 중 8가지는 기생충병이다.

소외열대병은 ‘열대병’의 일부이고, ‘열대병’은 ‘열대지역과 아열대지역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이다. 쾨펜에 따르면 열대지역이란 월평균 섭씨18도 이상이 12개월 내내 지속되는 지역을 말하며, 아열대지역이란 월평균 섭씨 10도 이상이 8개월 이상인 지역을 말한다.

즉, 쾨펜의 기후구분에 관한 정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부지역과 제주도는 이미 아열대지역에 속하여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평균기온대가 북상 함에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지역이 아열대화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인류의 열대우림 파괴, 그리고 그에 따른 동물의 자연 생태계 밖으로 향한 피신과 이동, 지구촌 여행객의 증가와 빈번한 이동 등 여러 요인은 열대지역에 갖혀 있던 열대병이 비열대지역으로 점차 퍼지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한편 온대지역은 월평균 섭씨 10도 이상의 기온이 연 8개월 이하(4-7개월) 지속되는 지역을 말한다. 온대지역은 열대 및 아열대 지역과달리 추운시기가 있어서 병을 매개하는 곤충이 동면하게 되므로 이 지역에 열대병이 많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소외열대병은 자체의 병원성 이외에도 다른 질환에 합병증으로 감염될 경우 사망률을 더 높이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정작 소외열대병의 치료는 매우 저렴하게 먹히는데 예를 들어 주혈흡충의 경우 한 어린이의 연간 치료비는 1달러 미만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소외열대병이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재감염 때문이다. 치료를 하더라도 곧 재감염이 된다면 이 병의 근절이 어렵게 된다. 재감염은 오염된 환경에서 오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는 환경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몇몇 대형 제약회사는 매년 치료약제를 기증하여 일부 국가에서 집단치료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으로 인류에 대한 고른 혜택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좀 더 못사는 나라에는 여전히 손길이 덜 가는 문제점이 있다.

한가지, 미국과 같이 잘산다고 하는 나라에도 수백만의 가난한 사람이 빈곤층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소외열대병이 다른 보건문제에 그냥 묻혀 버리기 훨씬 쉬워진다. 유럽의 국가에서도 같은 일이 있다는 점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 병은 지구촌 149개국에 퍼져 있으며 14억 세계인구에 해를 주고 있다. 종종 만성으로 흐르기 때문에 정확한 사인을 모르고 죽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색소모세포진균증과 심부진균증, 옴과 외부기생충 및 뱀교상이 추가되었다.

소외열대병은 코로나가 아닌 때라도 여전히 많은 죽음을 초래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이들에 대한 치료사업이 중단됨으로써 WHO의 로드맵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코로나가 엄청난 예산을 블랙홀 처럼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영향에 관한 WHO 최근 공식보고에 따르면 44%(48/109)의 국가에서 소외열대병에 대한 투약이 중단되었다. 특히 못사는 나라의 사람들일 수록 코로나로 인한 이중 소외의 영향이 커서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고찰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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