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아영 시인

최아영 시인

[동양일보]바야흐로 책읽기 좋은 계절입니다. 만산홍엽과 친해지기엔 더더욱 좋은 계절이기도 하고요. 니체를 동경하며 ‘만년문학소녀’로 살고픈 6학년 여학생, 오늘은 동네 뒷산으로 시(詩)를 만나러 가볼까 합니다. 이곳 생거진천 초평저수지에는 100대 명산에 선정된 두타산이 있고 정상에는 한반도지형전망대가 설치되어있어 주말이면 방문객들이 더욱 많이 모이는 곳이랍니다. 겹겹이 포개진 산세는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고 둥둥 떠 있는 작은 섬이 한반도지형과 꼭 빼닮아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답니다. 그럼에도 제 남편은 이곳에 와볼 기회가 없었다하니 어이가 없기도 하네요. 그래서 나서게 되었답니다.

  남편은 내박쳐두었던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척 둘러매고 나오더라고요. 총각 때에는 애지중지했던 가방이었지요. 이건 정말 비밀인데요, 당시 데이트를 할 때마다 저 둔탁하게 생겨먹은 가방을 주구장창 들고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요, 카메라 자랑까지는 제가 용서를 하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갑을 열어야 할 때가 되면 저놈의 가방에 꼬여있는 금속 고리를 양쪽 다 풀어헤쳐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사각으로 빙 둘러쳐진 지퍼를 열어젖혀야 되더랍니다. 어디 거기까지 뿐이었겠습니까. 뚜껑 속 카메라덮개를 한 쪽으로 젖히고 나서 가방 안쪽 벽에 붙어있는 지퍼를 한 번 더 열어야 비로소 당신의 그 육중한 지갑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지요. 이 모든 과정을 매번 바라보고 있다 보면 대개는 성질머리 급한 내가 먼저 지갑을 열게 되는 경우도 많았겠지요. 문제는 이 곰 같은 애인이 꽤나 얄밉기도 했을 텐데 말입니다 뭐에 씌었는지 저는 오히려 다르게 생각을 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 이 남자 연애 매너는 좀 구리지만 남편감으론 ….’

 한반도지형전망대는 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로 1053번지 붕어마을 광장에서 진입이 시작되고요 주변에는 붕어찜과 매운탕 등 ‘맛집’들이 곳곳에 있어 도시생활 속 지친 몸과 마음을 보양하기에는 딱 좋을 겁니다. 마을 안길을 따라 10분가량 운전을 하면 되지요.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구닥다리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애인 다루듯이 만지작거리는 남편의 손길이 설레어 보입니다. 나는 나대로 유튜브 영상을 찍느라 혼자 뭐라 구시렁대며 야지랑을 떨기도 하였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의 이 푼수놀음에 어이가 없었는지 몸을 숨기고 있던 새들의 이죽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라고요. 게다가 새털구름을 한 움큼씩 우리들 머리위로 뿌리며 가는 비행기가 있더랍니다. 그런데 탑승객들조차도 요래조래 유치찬란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며 박장대소를 하는 것 같았지 뭡니까. 뭐 어떻습니까, 웃을 테면 웃으라지요, 오늘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된 것이지요.

 참, 그리고 ‘농다리’를 아직까지도 못 가보셨다면 2~3분 거리에 있는 청소년수련원 주변에 주차를 하시어요. 그리고 수변 산책로를 따라 사오십 분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초롱길하늘다리’를 지나 선조들의 효심과 지혜가 낳은 ‘농다리’ 앞에 떡하니 서있게 될 것입니다. 들꽃 길을 걸어가는 내내 산새소리와 마음 속 일렁임은 덤이겠지요. 오늘따라 하늘은 왜 그리도 푸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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