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억 청주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부

반영억 청주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부

[동양일보]타작마당에서 거두는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불에 태워버린다. 우리 인생여정의 마무리 안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필요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삶을 가꾼다면 불안과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다. 분수에 맞는 처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욕망에 따라 살아가면 전전긍긍하게 되고 아등바등하며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매사에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아홉을 지녔어도 열을 채우지 못해 안달한다. 그리하면 결국, 하나 때문에 아홉을 잃게 된다. 그래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하여도 즐겁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귀하여도 또한 근심스럽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불행한 것은 물질적인 궁핍보다는 아픈 마음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성녀 마더데레사는 말한다. “줄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주십시오.”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이상이다. 금전적인 도움은 즉각적으로 수혜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떨어지면 또다른 도움을 요구한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과 공감하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세상은 물질보다 사랑에 굶주려 있다. 사랑이 답이다. 사랑하면 문제의 해결 방법이 보이고, 사랑이 식으면 문제와 핑계만 보이게 마련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름답고 멋진 길, 콧노래를 부르면 즐겁게 걷고 있는 길이 라 하더라도 종착지가 하늘의 충만함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늘은 땅에서 열린다. 험한 길, 가시밭길, 낭떠러지기가 있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어려운 오르막길이지만 최선을 다해 가는 길에 충만한 가치가 살아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떤 이는 장미를 보고 왜 가시가 있느냐고 불평하지만, 어떤 이는 가시 중에도 장미가 피는 것을 감사한다. “똑같은 조건 아래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낸 사람과 찾아내지 못한 사람은 그 삶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법정). 그러므로 날마다 순간마다 내 삶이 잘살고 있는 것일까, 나답게 사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일까 점검할 필요가 있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놀란 대한민국 월드컵 경기’, ‘기적의 16강 진출’을 얘기하며 거리응원으로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치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기적의 16강이 아니라 꿈을 향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 “가치 있는 것은, 상이 아니라 노력이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한마음 한뜻으로 거리응원을 할 수 있는 뜨거운 열정과 공감이 있으니 모두가 승리자이다.



이 와중에도 ‘화물연대 파업’과 ‘엄정대응’,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법정기한 넘긴 2023년 정부 예산안’ 등등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모두가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최선의 결과를 희망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시끄러울까? 서로 다른 의견의 조화를 이루기는 불가능한 것인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고,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간절히 바란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느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크기가 드러난다. 진보, 보수, 네 편, 내 편을 넘어 모두가 행복한, 따뜻한 가슴을 지향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우리는 세상의 혼돈과 시끄러움 속에서도 불평불만이 아니라 지금 살아있으니 감사하고, 자족함으로 행복할 수 있음이 아름다운 여정이었으니 스스로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새로운 내일을 희망해야 한다. 우주 만물을 주신 창조주께 감사하고 지금의 환경과 처지, 여건을 기회로 삼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침묵으로 기도하며 묵은해를 떨치고 희망의 새해를 준비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가운데 내일이 더 맑고 빛나게 다가옴을 믿는다. 오늘은 쭉정이에 연연하지 말고, 알곡을 곳간에 모으는 감사함으로 아름답고 벅찬 하루를 마무리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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