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의 변천사·문제점

2013-04-29     동양일보
 
1950년대의 국제결혼은 주로 미군병사와 한국인 여성이 중심이었고, 그 후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한국여인과 결혼하는 형식이었다.
그런 가운데 통일교를 중심으로 한 합동결혼을 통해 일본인 여성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결혼이주여성이 본격적(?)으로 입국했다.
그 후 다시 농촌총각장가보내기운동이 시작되면서 중국여인들이 많이 입국하였다.
주로 조선족을 중심으로 한국어에 능한 사람들이 입국하였으나 문화의 차이와 경제적 문제로 갈등이 많았다. 조선족은 스스로 중국인으로 알고 말하지 한국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중국적 사고방식으로 살아왔고, 그로 인하여 시부모 및 가정 내의 갈등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였다. 국적을 취득하자마자 가출한 경우도 많았다. 경제적인 이유로 입국한 사람들이 많았고 언어가 가능한 관계로 시골생활을 버리고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문제가 많이 발생하자 결혼정보업체들은 눈을 동남아로 돌리기 시작했다. 필리핀으로 행로를 바꿔 보기에도 민망한 문구를 달아 시골길에 현수막으로 걸어놓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해서 한 때 농촌의 많은 마을에서 필리핀 붐이 일기도 했다. 특히 학력이 높은 것을 자랑하면서 홍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시 결혼정보업체의 과장홍보문제가 불거졌고, 구타와 관련된 가정 폭력으로 필리핀 정부에서는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결혼으로 이주한 여성들은 지금 거의 학부형이 되었다. 혹은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살기도 하고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이중언어에 능통한 교육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그 후 다시 우리와 문화가 비슷하고 성실한 베트남으로 이동하게 된다. 베트남의 여성들은 순박한 면이 많고 그 나라의 풍습은 여자들이 일하는 것이라 한국에 와서도 부지런히 일하여 좋은 결과를 많이 보여주었다.
현재 그나마 문제가 가장 덜 한 집안이 베트남계의 여성들과 살고 있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필자가 살고 있는 금산군을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시군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대동소이할 것이라 생각한다. 베트남의 여성들은 열심히 일해 모범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역시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로 힘들어 하는 가정도 많고 베트남의 독특한 문화양상이 혹은 제도로 국가적 갈등을 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동남아 전반으로 확산된 상황이다.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혹은 캄보디아나 몽골까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캄보디아계가 많이 입국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몽골은 우리와 문화와 풍습이 비슷하여 적응이 쉽고,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이슬람계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종교적인 갈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캄보디아는 불교인이 많아서 한국인과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는데, 한국어 발음을 힘들어 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외국여성들이 한국인처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능하면 한국인처럼 말하는 것이 후세를 위해 바람직한 것임은 자명하다.
국제결혼이 무슨 유행도 아니고 어찌 이리 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는지 모르겠다. 우선 결혼정보업체의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력 및 재산관련, 혹은 건강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한다. 결혼은 금전보다 앞서는 인륜지대사다. 돈을 버는 것보다 혼사를 성사시킨다는 의무감이 앞서야 한다. 다음으로 언어문화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결혼하고자 하는 상대국의 문화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쌍방향 공부를 이수한 후 혼인을 허락해야 한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힘들 보태주어야 한다. 국제결혼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책임진 결혼이다. 이들에 대한 교육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입구하는 것으로 보아 과거보다는 체계가 잡힌 것 같으나 앞으로도 보완해야 할 일들이 많다. 서두르지 말고 제도적 장치를 완비해야 한다.
<중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