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으로 떠난 숙이!

김순옥 운호고 교사

2013-07-08     동양일보

문학수업을 진행 하는 과정에서 ‘신경숙’의 소설을 가르치게 되었다.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이라 알려진 ‘외딴방’에서는 학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산업체 특별학교의 고된 일상이 나온다. 일반 정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열 여섯의 ‘나’가 배움에 대한 열망 하나로 그 시기를 인내해야 했던 많은 것들과의 조우는 이미 성인이 된 작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외딴방으로 걸어 들어 간 건 열여섯이었고 그곳에서 뛰어나온 건 열아홉이었다. 그 사 년의 삶과 나는 좀처럼 화해가 되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중간다리도 없이 갑자기 공장 앞으로 걸어가야 했던 나와, 거기에서 보았던 내 나이 또래, 혹은 대여섯 살 많은 처녀들 앞에 놓인 삶의 질곡들과 자연의 숨결이 끊어진 이 도시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내 젊음에 대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자신은 없고 생생한 아픔만이 승해서 범한 건너뜀. 이건 소설이다, 하면서도 나는 죽을 것같이 가슴이 아팠다.”          -신경숙 ‘외딴방’중에서
작가는 그 죽을 것 같이 가슴이 아팠던 시절을 꺼내 풀어냄으로써 그 시절과의 화해를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10여 년 전만 해도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가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문득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밝은 대낮에 아무 걱정도 없이 교복을 입고, 번듯한 교실에 앉아 공부만을 할 수 있다는 것, 이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축복이다. 너희들 또래의 청소년들 중 많은 이들이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느냐!’ 이렇게 서두를 시작하고, 산업체 특별 학교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비단 신경숙 작가만이 아니었다. 또한 1970, 80년대만의 일도 아니었다.
1990년대 즈음, 내가 근무했던 중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진학 시험을 마치고, 졸업을 앞 둔 어느 날, 숙이(가명)는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제 집안 사정을 아시지요? 엄마가 아프시고 동생이 어려서 제가 집을 떠날 수 없지만, 공부도 계속하고 싶고, 돈도 벌어야 해서 산업체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요.”
 그렇게 숙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고, 졸업식이 끝난 직후,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숙이를 데리러 온 회사 분의 자동차에 실려 눈발 날리던 교정을 뒤로 한 채, 옷 보따리와 함께 우리 곁을 떠났다. 그날, 회사의 과장인가 하는 분에게 나는 간절히 부탁했다.
 ‘우리 숙이 조금이라도 덜 어려운 부서에서 일하게 해주시고, 휴가를 제 때, 꼭 보내주셔야 집에 있는 엄마와 동생을 살펴줄 수 있다고, 무슨 일이 있으면, 학교에도 꼭 연락해 달라고.…’ .
  그 후로 3년이 흐른 어느 날,  병중인 엄마도 치료를 계속 받으셔서 호전되고 있으며, 본인도 산업체 특별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숙이가 떠날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동생만은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어 앞으로 3년간 더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다고 하였다.
 숙이는 그 3년간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도 휴가 때에는 집에 와서 가족이 먹을 반찬과 빨래, 청소 등을 해놓느라고, 한시도 앉아 쉴 틈 없이 일만하다 돌아가곤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동생의 일반계 고교 진학을 위해 다시 3년을 더 다녀야겠다고 했다.
 신경숙 작가가 외딴방에서 토로했던, ‘그 삶의 질곡들과 자연의 숨결이 끊어진’ 외딴방에서의 삶이 다시 동생을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당시, 내 눈에는 아직도 여린 소녀이기만 한 숙이의 희생과 그런 삶의 선택에서 가슴 뭉클한 숙연함을 느꼈다.
산업체 특별학교 시절 ‘최홍이’선생이 학생 신경숙에게 소설을 써 보는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했고, 그 고된 생활을 견디기 위해 ‘꿈’이 필요했던 신경숙은 소설가가 되었다.
한동안 연락이 끊긴 숙이가 오늘따라 많이 보고 싶다.
가족이 삶의 목적이고 희망이었던 어린 숙이는 지금쯤 결혼은 했을까? 아이의 엄마로, 부인으로, 며느리로, 딸로, 언니로, 지금도 그렇게 부대끼며 치열한 삶을 꿋꿋하게 살아내고 있을까?
‘이제쯤은 오롯한 자신만의 삶을 가꾸어 갔으면, 신경숙처럼 지난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도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숙이에 대한 나의 안타까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