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버리자

2013-09-03     동양일보



강호생 (한국화가·충북미술협회장) 작,‘Fantasy20090701’








우산을 버리자


강형기 충북대 교수·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
 

 

비오는 가을이면 멋진 우산을 골라 쓰고 극장에 가고 싶다. 아마 그곳에는 모든 것이 다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하는 욕망. 꿈이라는 이름으로 쫓아가는 허망.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는 모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눈감는 위선. 삶이라는 이름으로 변명하는 현실. 아! 그러나 나는 뛰쳐나오고야 말 것이다. 종잡을 수도 없는 두려움 때문에.

신작로에 핀 코스모스를 따라 가을이 내게로 온다. 코스모스 길을 걷다가 잠자리를 보고 행복해지는 소년이 되고 싶다. 그 길로 높은 산에 올라가서 내가 어디서 온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싶다. 산을 내려오면서 석양의 황홀함에 5막 3장을 음미하리라. 그리고 밤하늘에 가득한 별빛을 느긋하게 바라보다가 그 별빛을 가슴에 담아 멀리 님에게 보내고 싶다.

이 가을엔, 기차를 타고 싶다.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대지의 파노라마를 보고 싶다. 강과 계곡, 숲과 목장의 언덕. 형상을 바꾸며 이어지는 구름. 태양 빛에 떨리고 작렬하는 공기. 촌락과 도시의 모습들을 보고 싶다. 창문 저 쪽에서 펼쳐지는 지리의 멋진 앨범을 멍하니 보고 싶다. 그러나 맹세코 시계는 보지 않으리라.

이 가을엔, 맑은 날 하늘을 자주 쳐다보고 싶다. 나는 그랬다. 구름이 끼어야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은 날 하늘을 잊어버리고는 구름이 하늘을 앗아간다고 생각했었다. 하늘을 앗아가는 것은 구름도 비도 아니다. 하늘을 앗아가는 것은 욕망의 우산, 인습의 우산, 제도의 우산이라는 것을 알아야겠다. 이 가을엔 우산을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