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자꾸 목이 마르다

심 억 수청주문인협회장

2013-09-24     동양일보


박진명(한국화가) 작, ‘월하(月下)’


나도 자꾸 목이 마르다
심 억 수청주문인협회장

세상의 모든 것이 깊어지고 채워지는 가을이다.

바람에 일렁거리는 벼 이삭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더러 고개를 들고 서 있는 것들은 아직 여물지 않은 것이거나 곡식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피들이다.

나는 잘 여물어 고개 숙인 알곡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해본다.

나의 삶도 어느덧 가을인 것 같다. 파릇파릇했던 봄도 지나고 열정으로 모든 것이 거침없었던 여름도 지났다.

가을이 인생의 끝은 아닐 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걸어온 내 삶의 이야기를 이제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들이 귀 기울여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멀리 돌아온 길, 흙탕물이 고여 있는 길, 가시덤불이 있는 길, 그리고 어디쯤 가면 굽은 길 있고 곧게 바른길이 있는지 그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잠시 목축일 시간도 없이 숨 가쁘게 여기에 왔다. 목마른 가을 산천처럼 나도 자꾸 목이 마르다. 다
시는 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여기에 서서 나만의 샘을 깊게 파 내려갈 것이다. 그리하여 맑고 시원한 물이 사계절 쉼 없이 솟아오르는 그런 샘물을 만들고 싶다.

사색의 샘을 만들고 평화의 샘을 만들고 희망의 샘을 만들어 누구든지 와서 목을 축이고 힘을 얻도록 남아있는 계절을 알곡으로 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