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딸 전설 애틋한 구라산… 몸은 ‘힐링’ 눈은 ‘호사’

미리 만나는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 <6>

2013-10-24     이도근

사람들은 여행을 꿈꾼다. 책상 앞에 앉은 넥타이맨이나 가을걷이를 준비하는 이웃 아주머니나 여행을 꿈꾼다. 더운 여름엔 더워서, 추운 겨울엔 추워서다. 봄이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가을이면 여행하기 더 좋아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찬바람이 불며 기다렸다는 듯 단풍이 더 고운 빛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눈에 보이는 산과 들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느라 여념이 없다. 단풍관광객에게 이맘때는 최상의 시기다. ‘보는 재미 걷는 재미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가을여행’이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 여섯 번째 이야기로 담았다.
청주와 청원, 증평의 아름다운 여행지를 한 데 묶어 문화와 예술, 생태환경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세종대왕 힐링로드 100리길’은 가을 여행에 딱 맞는 여행지다. 올레길이나 둘레길 등 대부분의 길들이 생태를 테마로 하지만, 이 길은 역사와 농경, 주민이야기까지 꽉 채운 색다른 문화벨트로 곳곳의 숨은 비경을 자랑한다.
초정약수를 찾아가던 세종대왕이 느꼈을 아름다운 풍경을, 2013년의 가을에서 다시 한 번 마음에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 맑고 깨끗한 하늘로부터 살포시 내려앉은 가을단풍으로 물들인 청원 구라산은 몸에는 ‘힐링’을 눈에는 특별한 ‘호사’를 선사한다.

●아홉 딸의 전설 새긴 ‘구라산성’
청주에 상당산성이 있다면, 청원에는 ‘구라산성’이 있다.
청원 미원면과 북일면 사이의 경계에 있는 해발 502m의 구라산(謳羅山)에 축조된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조선시대의 지리지에도 빠짐없이 기록된 곳이다.
기록들은 “구라산성은 청주의 동쪽 40여리에 있으며 둘레는 2790척이고 성내에 2개의 우물이 있다”고 전한다.
구라산은 고려산(高麗山)·구려산(句麗山)·궁예산(弓裔山)·구녀산(九女山) 등의 별칭이 있는데 지금은 주로 구녀산으로 불려진다.
천연광천수로 유명한 내수읍 초정리를 감싸는 형태다. 능선은 내수읍과 증평읍, 미원면의 경계가 되며, 한강과 금강의 수계를 가르는 한남금북정맥에 속한다.
초정약수 물나들이길에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이 산은 산세가 완만하고 어느쪽에서 산행을 해도 2시간 안쪽이라 가족산행에 이만한 곳이 없다.
산행은 초정리에서 시작하거나 이티재휴게소에서 시작하는데, 초정리에서 이티재휴게소 사이의 교통편이 마땅치 않음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
이티재는 딸을 시집보낸 할머니가 고개 마루에 올라 딸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이티봉에서 구녀산까지는 단조로운 오르막 능선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소나무 숲길이 갓 뚫어놓은 길처럼 훤해 편하게 갈 수 있다.
20여분 정도 오르면 구라산성 성벽이 있던 능선이다. 성벽 형체가 모두 남아있진 않지만, 지형을 유심히보고 조금만 상상해보면 성벽을 그려낼 수 있다. 여기서 5분 더 가면 정자와 쉼터가 나오고 쉼터 가까운 곳에서 초정리 쪽으로는 남아있는 성벽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구라산성의 둘레는 약 856m이며 형태는 부등변방형인데 성내에서 가장 높은 북단에서 양쪽으로 이어진 능선이 남쪽 계곡을 향해 점차 낮아져 삼태기 모양을 이루었다.
기반은 2중쌓기로 한 후에 석루(石壘)를 쌓아 올렸는데 석루는 대부분 붕괴되어 유구가 토로(土壘)처럼 남아있다.
이티재(二日)에 올라가는 능선의 서북단 남쪽부분에 석 성벽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높이 7m, 폭 8m, 두께 6.3m의 내외협축성(內外夾築城)이었음을 보여준다.
산성의 시설로는 남쪽 수구 옆에 있는 남문지와 북쪽과 서쪽의 작은 문지가 있으며, 북쪽의 정상부에 망대가 있었던 듯 보이지만 현재는 완전히 붕괴되었고, 성벽이 능선으로 이어지는 북·남·서 모퉁이에 곡성(曲城)이 설치되었다.
성내의 남쪽에는 옛 절터에 세운 구려사(句麗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지난 1979년 종암리로 옮겼다. 주위에서는 신라계의 토기, 기와조각이 많이 수습되고 간혹 백제계의 토기편도 발견되며 고려 초의 토기·기와조각이 발견된다.
구라산성이 구녀성이라 불리는 데에는 사연이 얽혀있다. 옛날 이곳에 홀어미가 딸 아홉과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았는데, 남매간에 불화가 잦더니 마침내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됐다. 딸들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고,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기로 해서 승부를 내기로 한 것. 날이 지나 딸들은 성을 거의 완성시켜 가는데, 서울 간 아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홀어미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에게 먹이며 딸들을 쉬게 했다. 그런데, 딸들이 팥죽을 식혀 가며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이 퉁퉁 부은 다리를 끌며 돌아왔다. 내기에서 진 아홉 명의 딸은 성벽위에 올라가 몸을 던졌고, 동생은 그길로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홀어미도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고 숨을 거두었다. 그 뒤로 아홉 명의 딸들이 쌓은 성을 구녀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라산성의 지세와 지형적인 배려, 성문, 망대, 수구의 배치 그리고 출토유물 등으로 미뤄 옛 삼국시대 신라 측에서 축성, 낭비성(娘臂城)의 백제 또는 고구려와 대결하기 위한 전초기지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삼국의 각축장으로 소속이 자주 바뀌었다고 추정된다.
후삼국시대에도 전략적 요충지로 군사가 주둔해 낭비성의 견훤(甄萱)과 전투를 치렀고, 고려시대까지도 성곽의 기능이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운보의 집’ 대가의 흔적 오롯이
초정약수에서 청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만나는 ‘운보의 집’이 있다.
운보가 살던 한옥과 미술관, 찻집, 도예공방, 운보의 묘 등이 자리 잡은 이곳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해 걷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줄 수 있는 가을여행지다.
운보 김기창. 이름만 들어도 대부분 알고 있는 현대 화단의 대가이자, 장애를 이겨낸 인간 승리의 모델이기도 하다.
운보 김기창은 ‘운보의집’이라는 문화 공간을 선사하고 떠났다. 운보의 바람에 부응하는 듯, 매년 10만여명이 이곳을 찾는다. 9만9000㎡(3만평)의 부지에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많은 건물에는 아직도 운보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운보 김기창은 부인 우향 박래현을 떠나보낸 후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내려왔다.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그동안 사둔 땅을 다지기 시작했다.
1979년 혼자 기거하면서 하나하나 돌을 쌓고, 길을 닦고 하면서 문화 공간을 만들었다. 1984년 현재 전시관 건물인 ‘우향기념관’을 지어 개관식을 했다. 1986년에는 운보공방을 만들어 청각장애인들에게 기술을 알려줬다. 홀로 설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가 이곳에 내려온 이유 중엔 전국의 장애인을 위한 미술전문학교를 만들려 했다고도 전해진다. 청각장애인들에게 기술을 가르친 것도 그 일환이라고. 한국의 중심인 충북에서 문화의 중흥을 이끌고자 노력한 운보의 뜻이 건물에 서려있다.
이곳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 살던 ‘운보의집’과 ‘운보미술관’ ‘운보공방’ ‘분재원’ ‘갤러리’ ‘도예교실’ ‘야외 자연석 공원’ 등이 마련되어 있다. 운보의집은 평소에도 CF, 드라마, 웨딩 사진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운보의집에는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과 조각품들이 관람객을 편안하게 해준다.
운보가 살던 한옥에는 방과 주방, 정자, 연못 등이 있다. 정자는 운보 선생이 손님이 오면 앉아 필담을 나누던 곳이고, 비단잉어들이 살고 있는 연못은 운보가 생전에 고기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소일하던 곳이다.
운보 미술관은 한국외대 설립자인 고(故) 김흥배 박사가 건립 기증한 ‘운향 미술관’을 증축한 후 일반에 공개 되었다.
고 김기창 화백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조명하며 감상할 수 있는 3개의 전시실과 자료실, 영상실, 학예실, 수장고로 구성되어 있으며, 운보의 부인인 우향 박래현 화백의 작품과 북한에 있는 동생 김기만 화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운보는 지난 2001년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림을 좋아하고 즐기며 지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 꿈을 심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