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우간다 대사 장 인 남 바오로 대주교

현재 교황대사 110명중 유일한 한국인
“올바름이나 가치를 어린마음에 심어주는 교육 필요”

2010-05-24     동양일보

 

장인남 (張仁南 Tschang In-nam)바오로 대주교는...

 △1949년 10월 30일 청주 출생 △청주 주성초-청주중-성신고-대건신학대 석사(1976) △사제수품(1976.청주교구) △충주교현동본당보좌신부(197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사무차장(1978) △교황청 라테라노대학 신학박사(1979-1985) △엘살바도르 교황대사관 2등서기관 △에티오피아 교황대사관 1등 서기관(1988) △시리아 교황대사관 1등 서기관(1991) △프랑스 교황대사관 2등 참사관(1994)△그리스 교황대사관 1등 참사관(1997) △벨기에 교황대사관 1등 참사관(2000) △대주교 수품-방글라데시 교황대사 임명(2002) △우간다 교황대사 임명(2007) △현주소:p.o.Box 7177 Chwa Ⅱ Road, Mbuya Hill Kampala, Uganda ☏(254-41)450-56-19. Fax(256-41)422-17-74 △E-mail: nuntius@imul.com

 5월 20일 오전, 청주시 흥덕구 개신동 푸르지오 407동 204호를 찾는 방문객은 우선 5월 신록이 내뿜는 청량한 공기에 머리가 맑아진다.

주차장 주변의 화단엔 새로 나온 나뭇잎들조차도 꽃처럼 화사롭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니 첫 눈에 띄는 것이 여행용 큰 가방 2개. 필시 장 대주교가 4월 말 귀국할 때 썼던 가방일 것인데, 며칠 뒤면 다시 쓸 것이어서 내 놓은 것이리라.

남향받이 45평짜리 아파트의 거실엔 보행이 어려워 휠체어를 타야만 문 밖 출입을 할 수 있는 어머니(임정환·90세)께서 비스듬히 앉아 계셨다. 우리가 들어서자 장 대주교(61)는 방문객들이 누구인지를 어머니께 소상하게 말씀드린다. ‘대주교’라는 가톨릭교회의 큰 어른이 아니라 영락없는 효자아들의 행실이다. 대담을 위해 소박한 식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키 164㎝ 체중 63㎏의 대주교에 비해 노(老) 기자는 나이도 더 들고 덩치가 더 큰데도 괜히 주눅이 든다. 아무래도 죄가 많은 탓일 것이다. 한 시간여 격의 없는 대담을 나누면서 시종 ‘영혼까지 맑은 사람’이란 느낌을 갖는 것은 몸에 밴 겸손과 소년 같은 미소 때문만이 아닌, 오랜 수행자만이 지니는 특별한 격조(格調)때문일까.

-대주교님이 청주에 와 계시다기에 급히 찾아뵈었습니다. 휴가신가요?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4월 말에 들어와 5월 한 달 지내고 5월 말일 날 출국합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휴가지요. 어머니가 계셔서 가능하면 기회 닿는 대로 오고자 합니다.”

-‘교황 대사’110여 명 중 유일한 한국인이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현재로는 저 혼자만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 내에는 한국인 교황대사 출현이 어렵다는데, 왜 그럴까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 로마 교황청 외교관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한국인 신부님 한 분이 공부하고 있는데 내년에 과정(3년제)을 마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 다음에 외교관 현직 생활 하면서 경험 쌓고 하는 과정 등 정상적인 코스를 밟는데 한 20년 정도 걸립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들이 있는 것이겠죠”

-한국에 ‘대주교’ 임명 받으신 분은 몇 분이나 되는지요.

“대교구를 맡으신 분이 대주교인데 현직 대주교님은 세분이 계십니다. 서울 정진석 추기경님이 서울 대교구장으로 계시고, 대구 대교구가 있는데 현재 공석입니다.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님이 4월 30일 부임하셨지요. 또 한국의 교황 대사인 오스바 바실리아 대주교님(필리핀 출신)이 계십니다.”

-지금 교황 대사로 계신 우간다에는 2007년 8월에 부임하셨는데 더 있게 되십니까? 가톨릭 국가지요?

“교황청의 결정에 따릅니다. 경우에 따라 재임기간은 각기 다르지요. 우간다는 2800만 인구 중에 1200만~1300만이 가톨릭 신자로 봅니다. 50%는 안 되지만 43% 정도 됩니다. 또 거기가 옛날에 영국과 돈독한 관계가 있어서 성공회가 가톨릭 보다 2년 먼저 들어와서 성공회 선교활동도 활발한 그리스도교 국가라고 볼 수 있지요.”

-근무 분위기는 좋으시겠습니다. 한국인은 얼마나 사는지요.

“전에 방글라데시 근무할 때는 90%가 회교신자들인 ‘회교국’이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0.2%였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교회였기에 힘들었는데 여기에서는 신자 수도 많고 사회 중요 책임을 맡은 사람도 신자가 많습니다. 근무여건은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은 150명쯤 됩니다. 절반은 선교사들입니다.”

-오늘이 ‘세계인의 날’입니다. 대주교님처럼 국적과 관련 없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생활하시는 분들이 돋보이는 날이기도 하거든요.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내일은 또 ‘부처님 오신 날’이자 ‘부부의 날’이고…그래서 이 달을 ‘가정의 달’이라 합니다. 아픈 기억이시겠지만 아버님을 일찍 여의셨지요?

“아버님이 육군 장교로 계셨습니다. 6.25 터질 때 육사 교관으로 계셨는데 의정부 전투에서 전사하셨어요. 1950년 6월 29일쯤 될 겁니다. 60주기가 됩니다.”

-청주 강서성당 장인산(64) 총대리신부님이 형님이신데, 형제는 두 분 뿐이었나요?

“예. 남은 가족은 어머니와 우리 형제뿐이지요”

-혼자되신 어머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요.

“두 형제가 오늘날까지 있게 된 것이 어머님 은덕이지요. 어머니께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키워주시고, 신앙으로 나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시고…”

-어머님에 관하여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으시다면?

“어머님이 굉장히 엄하셨었어요. 우리가 커서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 들으면 안 된다 하시면서 엄하게 교육 시키시고, 한 주일에 한 번씩은 우리 공부하는 것 그 동안 생활 반성하게 하셨지요. 잘 못한 게 있으면 매도 드시곤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은 우리를 매 채로 때리시기 전에 우리가 잘못한 것은 자신이 잘못 한 것이라며, 스스로 매를 자신에게 치셨지요. 우리가 매를 맞는 것 보다 어머니가 자신을 매로 때리시는 모습이 더욱 아프고 잘못을 깊게 깨우치게 하셨어요. 그렇게 엄한 교육으로 우리 형제를 바르게 키우셨지요”

-감동적인 기억이시네요. 그런 경우가 많으셨나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거의 정기적으로 한 번씩 우리를 부르셔서 잘못된 것 꾸중하시고, 내 치실일 있으면 그렇게 하시고… 몇 번이나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이 때 장 대주교의 어깨너머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있으시던 어머니를 훔쳐보니 두 사람의 대담이 지루하셨는지 졸음에 빠져 계셨다)

-그런 어머님의 엄한 교육 속에서 성장하신 것이 지금 와서 돌아보시니 큰 보약 이었지요?

“감사하지요. 어렸을 때는 우리가 어디로 나갈지 모르는 그런 생활 아닙니까? 그래도 길을 잘 잡아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우리 두 형제가 이렇게 하느님 앞에 섭니다. 어머니께서는 오늘날도 항상 자식을 위해 기도하시고, 후원해주시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중학교 졸업 후 신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은 뒤 줄곧 그쪽 세계만 살아오셨으므로 다른 쪽 보시거나 갈등 겪으신 것도 없으시겠네요.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주일학교 다니고, 복사하고 그러면서 성당에서 크다시피 했기 때문에 신앙적인 바탕은 이미 마련됐다고 할 수 있겠지요. 초등학교 시절에도 누가 물어보면 ‘신부님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컸습니다. 소망대로 된 것이지요”

-형님도 중학교 나오시고 그렇게 하셨나요?

“네, 형이 저보다 3년 먼저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매를 맞아가면서 성장 하셨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전혀 다르지요. 지금 아이들 교육에 문제가 있지는 않는지요?

“제가 한국에서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을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지만, 엄한 교육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지요. 그래서 어떤 일의 올바름이나 가치를 어린 마음에 확고하게 심어주는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자유롭고 신체적 성장도 좋고 사회적인 환경도 좋아졌지만 우선 버릇이 없고, 자기를 다스리는 분별력이나 자제력이 없이 성장하면서 문제가 되리라고 봅니다. 부모님이나 어린이 또는 청소년을 지도하는 분들에게 충고 한 말씀 하신다면…

“우선 저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항상 제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모님 크신 사랑을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은 누구나 천당 가실 것이라 믿습니다. 자녀분들 위해 희생하고 하시는 것 보면 어느 사랑 보다 순수하고 큰 사랑 실천하시는 모든 부모님들을 경의로운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신부니까 그렇게 자식들 위해 희생하는 부모님 마음에 도달할 수는 없지요. 우리가 이제 많이 변한 사회세태 속에 살지요. 대가족 제도일 때는 3대가 함께 살면서 여러 가지 양적인 가치, 윤리 생활습관 등을 자연적으로 배우곤 했는데 가족제도, 생활리듬도 달라져있어 예전과 또 다른 도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제 개인 경우를 보면 부모님으로부터 엄한 교육을 통해서 받았던 윤리, 신앙, 이런 것이 나중에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나침반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감사하지요. 부모님들께서 자녀들 양육하시며 물질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교육면에 대해서 또 우리 전통 가치를 심어주시는데 힘쓰시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외국생활을 오래 하시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큰 것이 있다면…

“외국에 나가서 보면 우리나라가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발전해온 면도 그렇고… 전 외국에 나가서 한국음식 먹는 것이 제일 그립고, 김치찌개 등 맛있는 음식 생각도 많이 나요. 외국에 나가 있으니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 것도 많이 아쉽고요, 그래서 들어오면 친구들과 자주 만납니다.”

-어떤 친구들과 만나시는지요.

“신학교 때 함께 했던 친구들, 또 신학교에서 나가 사회 봉사하는 분들도 있지요. 엊그저께 문경에서 대건 신학대학 출신 동창회 비슷하게 모여서 운동도 하고… 한 30명 가량이 모였어요. 그중 반 정도는 사회에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오셨고, 옛날이야기 하면서 1박2일로 재밌게 지내고 왔습니다.”

-이제 아까 말씀대로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물론 중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혼율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이혼’이란 말을 다시 말하면 ‘가정이 파괴되는’ 것이지요. 부부들에게 좋은 말씀이 있으시면…

“제가 부부생활 안 해봐서 자세한 내막 모르지만(웃음), 혼인제도가 참으로 신성한 제도지요.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일생을 서로 약속하고 사랑과 행복을 누리자고 하지요. 그런데 이런 긍정적 면을 위해 희생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인내심, 서로 존중하는 가치들이 함께 가지 않으면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기 힘들다 생각이 듭니다. 행복에는 항상 십자가가 따르기 마련인데, 십자가를 외면하고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가능할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 세포예요. 가정이 잘 되면 사회 전체가 건실하게 되고 행복한 사회가 되지만, 지금 말씀 하신 것처럼 이혼율 많고, 자꾸 결혼하는 연령이 올라가고 자녀들 숫자도 줄어들어 우리나라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발전해서 부유한 나라를 이루지만 정작 사람이 없으면 텅 빈 세상이지요. 골다공증 현상이 될까 우려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지켜준 어떤 신념이랄까, 좌우명 있으시다면.

“저는 이제 주교로 서품이 될 때 좌우명을 ‘주님은 나의 빛’을 모토로 정했습니다. 제 삶을 온전히 요약하는 말이지요.

-한 마디로 모든 말씀을 듣는 것 같네요. 혹시 취미라면?

“학생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요. 친구들하고 축구, 배구, 농구 다 하면서 컸고 사제생활 하면서는 테니스도 많이 좋아했고, 이제는 무릎이나 이런 게 문제가 있어서 테니스도 좀 그렇고, 최근엔 골프를 시작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그렇게 안 되네요.”

-여기까지 오시면서 골프보다 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면?

“모든 분들이 사회생활 하면서 겪으시겠지만, 저는 사제로서 사목활동을 직접 하는 것을 제 꿈으로 하고 신부가 됐는데, 제가 하는 외교관 생활은 그것과 동떨어진 생활이에요. 일상적으로 사무직, 행정 직무를 수행하여야 하니까요. 외교관 생활을 주교님 명으로 시작할 때 그런 갈등이 많았었습니다. 또 사제생활 자체가 항상 주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인데 나약한 인간이다 보니까 주님만을 바라보지 못한고 곁눈질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실수도 범하고, 인간적으로 또 실패를 통해서 성숙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 한국 가톨릭이 최근 너무 양적인 증가에 힘을 쏟고 있지는 않는지요.

“한국은 아직도 가톨릭 신자의 숫자가 10%가 안 되는, 그래서 교황청에서 한국을 아직 선교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선교 활동은 하느님의 말씀을 입으로도 전하지만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선교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걸 행동으로 보여줄 때 진정한 선교활동이 이뤄지고, 거기서 질적인 면으로도 향상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고국이나 고향 사람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신다면…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못한 어려운 나라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 지구상에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성숙한 생각을 지녀 주셨으면 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대담·글/조철호 동양일보 회장

▶기록/오상우 ▶사진/임동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