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 평전 / 불꽃으로 타오른 민족혼<24>

‘땅속으로’에서 ‘낙동강’까지 신경향파 문학 태두로

2015-12-27     김명기 기자

(김명기 동양일보 기자) 포석이 1921년 7월 ‘동우회 순회극단’의 조선 전국순회공연 목적으로 쓴 한국 최초의 창작희곡인 ‘김영일의 사’를 발표한 이후, 그의 초창기 작품을 보면 대부분이 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23년 2월 동양서원에서 최초의 창작희곡집 ‘김영일의 사’를 펴냈고, 4월 8일 동명23호에 시 ‘내 영혼(靈魂)의 한쪽 기행(紀行)’과 ‘아침’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1일과 12월 1일 개벽 41호와 42호에 희곡 ‘파사(婆裟)’를 선보였다.

본격적인 시 발표는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펴낸 1924년부터 이뤄진다.

1월 1일 폐허 이후 임시호에 시 ‘경이(驚異)’와 ‘영원(永遠)의 애소(哀訴)’, ‘무제(無題)’, ‘고독자(孤獨子)’를 발표했고, 3월 1일개벽 45호에 수필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를 한 편 선보인뒤 4월 1일 개벽 46호에 시 ‘봄 잔디밭 위에’와 ‘내 못견데여 하노라’를 발표했다. 이 시편들은 다음달 안서 김억이 월평으로 다루었는데,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때의 작품들이 포석의 시인 데뷔작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그리고 6월 15일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발간하게 된다.

‘봄 잔디밭 위에’는 총 43편의 시(43)가 3부로 나뉘어져 수록되어 있다.

시집 서문을 보면 ‘노수애음’의 부가 가장 초기의 작품으로 동경에서 쓴 것으로 되어있다. ‘노수애음’의 부는 모두 8편의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경향은 ‘떨어지는 가을’, ‘고독의 가을’ 등 가을을 노래한 시가 많다. 8편 중 그 절반인 4편의 시가 가을을 시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에 가을이 그의 시적 상관물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동경유학 시절의 작품인 초기 시편들에, 그는 이국 땅에서 느끼는 고독감과 방황의 감정을 가을의 서정으로 노래했던 것이다. 먼 타국땅에서 방황하는 젊은 영혼의 스산한 내면풍경을 애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노수애음’의 부이다.

포석의 ‘봄 잔디밭 위에’ 시집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시집의 맨 앞에 장식되어 있는 것이 ‘봄 잔디밭 위에’의 부이다. 여기에 속하는 시편은 모두 11편으로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고향에 돌아와서 쓴 최근작이다. 그가 귀국한 1923년부터 시집이 발간된 시기인 1924년 6월까지 씌어졌다. 이때에 포석은 타고르의 시 ‘기탄잘리’ 심취했음을 회고했다. 포석은 귀국하던 해 겨울내내 ‘기탄잘리’를 애송했으며, 자기만큼 타고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까지 가졌던 것으로 술회했다. 그의 시적 변모가 타고르 시의 영향권에서 이뤄졌음이 회고담에 분명히 드러나 있다. 동경에서 쓴 시와 고향에서 쓴 시 사이에 그는 타고르 시에 심취했었던 것이다. 그가 타고르 시의 영향을 받아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하는 그 특징을 살피는 일은 그의 시 세계 전모를 조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포석에 대해 민병기 교수는 ‘3기의 시 세계’(44)로 구분했는데, 동경유학시절에 쓴 초기시와 모국에 들어와서 쓴 중기시와 망명 이후에 쓴 후기시가 그것이다.

 

포석은 1924년 11월 30일 매일신보에 시 ‘단장(短章)’을, 12월 8일 같은 신문에 시 ‘기억(記憶)하느냐’와 ‘가을’을, 12월 14일 시평 ‘명년도 문단에 대한 희망과 예상’을 발표한다. 그리고 1925년 2월 1일 개벽 56호와 57호에 포석은 첫 단편소설 ‘땅속으로’를 선보이면서 그가 관심을 갖는 문학적 장르가 시에서 소설로 바뀌고 있음을 예고한다. 그해 4월 1일 포석은 개벽 58호에 시 ‘<어둠의 검>에게 바치는 서곡(序曲)’과 ‘온 저잣사람이’를, 신여성 4호에 ‘고향의 봄’을 발표한다. 6월 1일에는 개벽 60호에 시평 ‘나는 이럿케 생각한다’를, 7월 1일에는 시대일보에 수필 ‘생명(生命)의 고갈(枯渴)’과 개벽 61회에 시 ‘바둑이는 거짓이 업나니’와 ‘어린아기’를, 8월 1일 개벽 62호에 시 ‘나에게 일반성(一反省)의 낙원(樂園)을 다고’와 ‘세 식구’를 발표한다.

 

포석은 첫 단편소설 ‘땅속으로’를 시작으로 1927년 7월 1일 조선지광 69호에 ‘낙동강’을 발표하기까지 카프 맹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는데, 이는 신경향파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기영은 ‘땅속으로’에서부터 시작된 일련의 포석 소설 작품과 관련해 이같이 말하고 있다.

 

조명희는 1924년부터 단편 소설을 써서 계속적으로 발표하였다. 그의 초기 단편 소설의 기본 주제는 다른 동시대의 프로레타리아 작가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빈궁에 대한 증오였다. 그러나 빈궁에 대한 증오의 주제로부터는 빈궁을 낳게 한 근원으로서의 일제 하의 식민지 착취 제도에 대한 증오와 식민지 노예사회의 밑바닥에서 기아와 인간적 무권리로 신음하는 조선 근로자의 운명과 처지에 대한 깊은 동정이 동시에 탐구되어 울려 나왔다.

‘농촌 사람들’, ‘땅 속으로’, ‘새 거지’, ‘마음을 갉아먹는 사람들’, ‘한 여름밤’, ‘저기압’ 등에서 조명희는 식민지 조선의 근로계급의 생활 처지와 더 유지될 수 없으리만큼 부패하고 모순에 가득찬 사회적 불행과 악덕에 대하여 거의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규탄하면서 그 죄책을 사회 앞에 물었다. 그는 근로 인민의 빈궁에 대한 인도주의적 격분과 함께 그러한 빈궁과 그 근원을 혁명적으로 개혁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 투사들에 대한 주제에 받쳐진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주제는 조명희가 국내외 창작 활동 과정에서 그 세계관이 점차 원숙되어 가고, 사회주의 사상에 더욱 더 접근한 시기부터 그의 창작에 나타났다.

‘R군에게’, ‘동지’, ‘이쁜이와 용이’, ‘아들의 마음’, ‘낙동강’, ‘춘선이’ 등이 바로 그러한 주제에 속한다. 이 작품들에서 작가의 주목이 다만 근로자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인도주의적 동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단 넘어서서 착취자들과 억압자들을 반대하여 투쟁을 호소하는 사회주의적 투사에로 옮겨지고 있다. 실례로 ‘농촌 사람들’과 ‘춘선이’는 그 묘사의 범위로 볼 때 모두 일제의 가혹한 농촌 약탈로 말미암아 고향을 떠나는 농촌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이 화폭의 중심에 그려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극적 운명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각이하다. 즉 ‘농촌 사람들’에서는 농촌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유랑의 길에 들어서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면 ‘춘선이’에서는 그와 유사한 정경임에도 불구하고, 유랑의 순간, 결연히 고향에 머무를 것을 결의하니만치 그만큼 계급적 의식과 민족 해방 투쟁에 있어서의 농촌 사람들의 임무에 자각한 선진적 농민의 형상으로 등장되어 있다.

- 이기영, ‘포석 조명희에 대하여’, 1957년 1월, ‘포석 조명희 선집’ 수록.

 

(43) ‘봄 잔디밭 위에’ 수록된 시

성숙(成熟)의 축복(祝福), 경이(驚異), 무제(無題), 봄, 봄 잔듸밭 위에, 정(情), 내 못견데여하노라, 인간초상찬(人間肖像讚), 달좃차, 동무여, 새 봄, 불비를 주소서, 감격(感激)의 회상(回想), 떠러지는 가을, 고독자(孤獨子), 누구를 차저, 아츰, 나의 고향(故鄕)이, 인연(因緣), 나그네의 길, 고독(孤獨)의 가을, 별밋흐로, 누(淚)의 신(神)이여, 한숨?, 어린 아기, 생명(生命)의 수레, 생(生)의 광무(狂舞), 닭의 소리, 혈면오음(血面嗚音), 하야곡(夏夜曲), 태양(太陽)이여, 생명(生命)이여, 알수업는 기원(祈願), 매육점(賣肉店)에서, 불사의(不思議)의 생명(生命)의 미소(微笑), 내 영혼(靈魂)의 한쪽 기행(紀行), 분열(分裂)의 고(苦), 눈, 나, 스핑스의 비애(悲哀), 번뇌(煩惱), 엇던 동무, 원숭이가 색기를 나앗슴니다, 영원(永遠)의 애소(哀訴) 등 43편.

 

(44) 포석 시 세계의 변이(變移)

민병기 교수는 포석의 시 세계를 3기로 구분하고 있다. 동경유학시절에 쓴 초기시와 모국에 들어와서 쓴 중기시와 망명 이후에 쓴 후기시가 그것이다. 민 교수의 구분 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포석의) 초기시는 개인적 비애감이나 고독감 그리고 방황 의식을 표현한 시가 많다. 타국땅에서 가난한 유학생이 느끼는 애상적 내면 풍경을 그린 시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이다. 그의 부정의식은 사회부정과 인간 불신감이다. 또 그의 시편들 속에 소멸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소멸 이미지의 반복과 반항의식은 그의 유년시절 부친 사망과 맏형의 가출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세상사회를 비판하고 인간을 불신하는 어두운 시적 경향이 초기시의 특징이다. 그러나 중기에 접어들면서 시적 변모가 보인다. 이 변모의 분기점에 타고르의 시가 놓인다. 이때 그는 타고르의 시에 심취하게 된다. 타고르 시의 영향이 그의 시를 변모시키는 데 적지않게 작용했음이 드러난다. 시의 분위기가 경건해지고, 밝아지며 생동감이 스며있다. 또 시편들 속에 어머니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때 어머니는 단순한 모성애적 의미가 아니다. 대지적·우주적·천상적·종교적 의미가 내포된 다의적 의미체이다.

후기시는 명명지에서 씌어진 것으로 산문시가 주류를 이룬다. 이 시편들 속에는 일제하의 사회 참상을 제시하고 투쟁을 강조한 저항적 작품과 혁명의 감격을 노래한 작품이 섞여있다. 그의 시는 현실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시편들이 많다. 그는 현실의식을 강하게 드러낸 생활시인이다.

그의 시가 지니는 의미는 1920년대 초 비현실적·몽환적 시가 주류를 이루었던 시대에 현실을 비판하고 반영시킨 참여성이 높은 시를 썼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 한국 시단의 흐름과는 달리 관념적 낭만성보다는 현실적 생활감정과 비판 정신을 작품 속에 깔고 있다.

이런 특징이 그의 시셰계에 시사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