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치유와 소통-61. 소영이, 울음 그치다

2016-03-14     동양일보

(동양일보)어떤 음식 재료이든 소금에 절이면 부피가 작아진다. 그 상태로 오래 저장해 두면 발효음식으로 변한다. 발효음식은 현상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으면서 맛과 향기는 더해간다. 겸손한 사람은 이처럼 자신을 상대방의 눈높이에 낮추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썩지 않고 발효되는 사람이다. 자신을 낮추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죽는 것만큼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낮출수록 높아지고 내려갈수록 올라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저녁 7시, 8살 여자아이 소영이와 사내아이 둘(의찬이, 영찬이) 삼남매를 돌보기 위해 작은 빌라 문을 열었다. 좁은 방안에 세 아이가 침대 위에 앉아 빨려들 듯이 텔레비전에 몰입하고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는 마치 확성기를 틀어 놓은 듯 왕왕대고 온 집안은 과자봉지, 쓰레기, 옷가지, 우산 등이 나만하게 나뒹굴었다.

아이들은 악을 쓰면서 대화한다. 붙으면 싸우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운다. 좁은 집안에서 참기 어렵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웃에게 방해될까 염려되어 아이들을 달래서 먼저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대충 방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이려고 냉장고 문을 여니 깻잎김치, 며칠 지난 듯한 삐득삐득 마른 어묵 조림이 반찬통 밑바닥에 깔려 있고 묵은 김치 조각 뿐 이었다. 달랑 계란 두 개 있는 걸 부치고 김이랑 밥을 먹였다.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다시 텔레비전 앞에 모여서 정신없이 뛰었다. 장난감은 없었다. 낡아빠진 동화책 두 권이 거실바닥에 나뒹굴었다. 그거나마 보자 했더니 격렬하게 거부하며 울었다. 그림을 그리자고 했더니, 그림을 그릴 수 없단다. 백지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것도 잠시 금방 싫증을 냈다.

침대를 무대삼아 아이들에게 차례대로 동요를 부르게 했다. 소영이가 먼저 노래를 불렀다. 한 곡이 끝나도 내려오지 않자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두 녀석들이 올라가 난장판을 벌였다. 소영이가 갑자기 동생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두 녀석들이 무서워하며 누나를 피해 도망가는데 소영이는 끝까지 따라 다니며 발로 차고 때리는 것이었다. 내가 말리자 가!, 가!, 가버리란 말이야! 소리를 지르며 나를 발로 차고 때렸다. 아무리 달래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자꾸 동생을 때리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분노로 가득한 얼굴로 매섭게 눈을 흘기고는 씩씩거리며 이방 저방 다니며 마구 물건을 집어던지고 괴성을 지르며 울어댔다.

8살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이 그악스러웠다. 너무 당황스럽고 감당이 안 되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한다고 하면 그칠 거라고 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소영이는 두 시간 동안이나 괴성을 지르며 울었다. 의찬이와 영찬이는 누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얘기하며 따로 놀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누나 쪽을 흘끔 쳐다보며 손가락을 입으로 갖다 대며 조용히 하란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남편과 나는 작은 사무실을 운영했었다. 두 아들은 초등학교에 막내는 집 근처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늘 맘 졸였었다. 그때 작은아들이 하교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막내딸 일기장을 보다 ‘사과를 깎아 먹으려다 손을 베었다. 피가 나는데 울을까 하다가 아무도 없어서 그냥 참았다’ 라고 쓰인 글을 보고 울컥 했었다.

물 한잔을 가지고 소영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소영이가 엄마 아빠 없을 때 동생 돌보느라 고생이 많았지? 동생들은 말도 잘 안 듣고 많이 힘들었겠구나! 선생님이 네 마음 알아. 선생님은 소영이를 도와주러 온 거야.”

하면서 꼭 안아 주었더니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소영이가 진정되니까 동생들도 진정되었다. 세 아이가 고분고분 양치하고 씻었다. 그러자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는 죄송하다고 엄마가 늦게 오고 소영이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렇다고 미안해했다.

비록 부모가 여의치 못해 부재중일지라도 아이들이 최소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만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참으로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가정의 미래요, 나라의 미래이다. 어떤 아이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양육하는 일은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가꾸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비록 호수에 물 한 방울 보태는 일일지언정 큰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자부심을 가져본다. (노옥순 ‘소영이, 울음 그치다’)

 

부모가 집안을 비운 사이 방치된 세 아이를 돌보며 겪는 이야기이다. 화자는 산만한 삼남매를 보고 난감해 하다가 자신의 아이들을 연상하고는 아이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다. 아이에 대한 연민은 곧바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공감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낯선 타자가 아닌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내 편이라는 느낌이 들었기에 소영이가 진정되었다.

이와 같이 어떤 대상을 보고 다른 대상을 연상할 때 일어나는 동질감이 치유의 정서로 이끈다. 아들이 며느리에게 밥을 못 얻어먹는다고 연상하면 남편 밥상 차려주기가 어렵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글쓰기는 또 글 쓰는 이를 치유한다. 대상에 대한 마음의 행로를 따라가다가 결말에 이르면 자아성찰의 아포리즘으로 끝을 맺는다. 이 성찰의 아포리즘이 자기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소영이, 울음 그치다’는 아이 돌보는 일이 작은 일이지만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이라는 아포리즘적 결말을 띤 작품이다. 이러한 자부심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기가치를 확인하는 일이며,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청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