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공군 중위’ 한진수 작가

“사랑과 예술의 아름다움 적은 시… 독자들에 미스터리로 남았으면”

2016-05-03     김재옥 기자

(동양일보)■ 당선작

 

포플러

 

상처입은 찌르레기 지저귀고

별들은 울고 또 서럽게 울고

 

봄이 오면 불어오는 산들내음을 나는 사랑했네

비둘기와 따스한 햇살을, 꽃다발을

그러면 나는 해가 빛나는 호수처럼 너를 사랑해

너는 말없는 포플러 나무처럼 편안하지

 

밤이와 그 자리에 찌르레기 지저귀고

별들은 다시 아프고 서럽게 울고

 

순진했던 나는 믿었네

언젠가 아름다운 별빛은 삶을 구원하리라고

그래서 고요한 봄의 포플러와 같은 너를 사랑했네

 

싱그런 봄바람처럼

싱그런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너를 사랑했네

 

순진하게도 나는 믿었네

별빛이 삶을 구원하리라

내 가슴 속의 노래하던 새가 죽고

악기의 현이 끊어질 때까지

 

 

 

 

이른 봄날의 담채화 같은 쌈박하고 시원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한진수(28·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씨의 시 ‘포플러’가 동양일보가 주최한 22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공군 중위로 복무하며 이달 말 전역을 앞두고 있는 한씨는 시인으로서 시의 대중화에 힘쓸 생각이다. 보편적이고 누구의 경험에도 공감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쓴 시를 통해 문학이 낯선 이들에게도 시의 감동을 전하고 싶어서다.

이를 위해 그는 군 복무를 마치면 모교인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깊이 있는 문학을 위한 공부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다음은 한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스무 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중간에 인류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4년은 쓰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이 돌아보니 오히려 학문의 깊이로 시의 깊이가 더 풍부해지는 시기였습니다. 10대 후반에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아이네아스, 니벨룽겐의 노래, 마하바라타, 베오울프, 겐지이야기, 고주몽설화 같은 고전 서사시를 읽다가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시가 좋아졌습니다. 글쓰기와 관련된 수업을 따로 들은 적은 없어서 문단에 아는 분이 계시지도 않고 문우도 없습니다. 정형화 된 틀을 따르기보다 옳은 글, 옳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관을 가지고 이런 사고를 표현하는 틀로써 시는 강력한 매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지용 선생님, 횔덜린, 엘리자베스 비숍처럼 완성도 높은 시를 쓰려한 시인들의 시, 철학, 사회과학, 시사평론을 즐겨 읽습니다.”

 

-시의 소재는 어디서 얻는지.

“생활주변의 아름다운 일상적 풍경을 재발견하려 노력합니다. 모든 게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지만 숲, 들, 산새, 풀꽃, 나무, 물, 별빛에 대해 노래를 적는 것을 좋아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어두운 무저갱을 들여다볼 때는 그 무저갱 또한 자신을 늘 마주 바라보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일상에 잘 귀 기울여 보면 대체로 침묵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일상에서 언제든 잠시 숨을 멈추고 그 순백색 침묵에 귀 기울이면 침묵도 마주 귀 기울여 줌을 발견합니다. 그 침묵을 가장 아름다운 시어로 채워 넣습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있다면.

“일기처럼 씁니다. 하루 저녁 산책, 운전하며 본 끝없이 펼쳐진 길, 달빛, 매미 등 시상이 떠오르면 메모나 녹음으로 그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기록하고 다시 나중에 그 언어를 해석하고 가다듬어 차분히 재정리합니다. 앉아 있기보다 야외에서 꽃과 나무가 가득한 들을 걸으며 쓴다고 할까요. 시를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외롭게 홀로 핀 민들레, 아이들의 웃음, 갈매기, 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개화 직전에 꺾여버린 복사꽃 가지, 별빛이 주는 비창한 느낌 등에 어떤 사건이 투영되어 있는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평소 정지용 선생, 또는 그 분의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유종호 선생님의 평처럼 정지용 선생님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깊게 천착하신 우리나라 현대시인의 원형이십니다. 그 분의 작품 중에는 ‘기차’와 ‘불사조’를 좋아합니다. ‘기차’는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란 저의 경험을 그립게 떠올리게 하는 시이며 한 세기가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향을 떠나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젊은이의 모습을 정직한 묘사로 그립니다. ‘불사조’는 개인적으로 그분이 지닌 어려운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통해 예술을 한다는 인식, 아름다움을 찾는 시인으로서 자의식이 흘러넘칠 듯 화려하고 애상적이며 기운 넘치게 드러나 좋습니다.”

 

-이번 수상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이 시는 사랑에 대한 시이며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입니다. 이 시가 여러분 마음에 미스터리로 그려졌으면 합니다.”

 

-시인으로서의 앞으로의 계획은.

“정진하겠습니다. 서정시를 쓰는 만큼 어려운 때가 올 것이라 봅니다. 저는 조금 자유롭게 일반인들에게도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시를 내고 싶습니다. 반드시 종이책 형태의 시집이 아니어도 블로그, SNS나 e-book처럼 다양한 플랫폼으로 앞으로 감각적이면서 일상적 주제의 시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것이 시가 대중화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과 친한 사람만이 아닌 평소 시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읽으며 잠시 행복에 잠길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룰 때라도 시는 보편적이고 누구의 경험에도 공감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기억은 가슴 아파/멀어지는 발걸음마다/멍든 미소로 웃어보네’ 지금 쓰는 시 ‘프시케’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수상소감

 

소식을 듣고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라일락향이 번집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바람은 모든 나무가 봄 속에 나부끼게 하였고 나는 나의 별빛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축하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친한 친구 하나가 죽었습니다. 시 쓰는 건 그만두고 취미로 한다니까 계속 써보라고 독려해주던 친구였습니다.

전화기 너머 기침은 환풍구에 곰팡이가 슬어서 그렇다면서 지병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학문적 길잡이가 되어주신 강원대 인류학과 김세건 교수님과 임봉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부모님께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심사평

“주제 쉽고 담채화처럼 그려… 신선·풋풋한 느낌”

응모작품수가 지난해에 비해 배나 되어 우선 기뻤다. 수가 늘어 반드시 좋은 작품이 뽑히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용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만도 기쁜 일이다. 실제로 좋은 작품도 예년보다는 많았다. 그러나 응모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은 올해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쉽게 읽히지 않는 답답한 시들이 많다는 점이 그 첫째로, 우선 주제가 너무 무거워 시가 주제 밑에 깔려 숨을 못 쉬는 느낌의 시가 많았다. 또 시란 이렇게만 써야한다 라는 고정관념도 심해 보인다. 억지스러운 비유가 많고, 마치 그것을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거나 재담으로 생각하는 듯한 경우도 많았다.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활달한 발상이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든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시 학도들이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시 공부는 비단 시 쓰는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은 시를 찾아 읽는 일이 더 큰 공부가 될 수도 있으니, 좋은 시를 볼 줄 모르고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응모작 중 먼저 눈에 띈 작품은 ‘포플러’(한진수)로서, 우선 신선하고 풋풋해서 시가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요즘 신인들이 즐겨 택하는 심각한 포즈에서 멀리 벗어나 가볍고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주제의 선택도 시를 크게 살리고 있다. 또 이 시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미지의 어둡고 밝음의 조화로서, 이것이 시에 리듬감을 더하고 있음은 크게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른 봄날의 담채화 같은 쌈박하고 시원한 시다. 우윤미의 ‘계절의 너’ 외 8편은 아주 재미있게 읽히는 단시들로, 굳이 분류하자면 “벌과 같이 작지만 꿀과 침을 다 가지고 있는” 에피그램 시라 하겠다. 비유도 놀라운 데가 있고 위트도 대단했지만, 한두 편만을 뽑을 수도 없고 모두를 당선작으로 할 수도 없어. 역시 당선작으로는 부적절하게 생각되었다. 한아민의 ‘그게 사랑인 줄 몰랐던 거야’는 첫사랑을 노래한 담백한 서정시로 억지도 없고 속도감도 있는 시였지만 무언가 조금 모자란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정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이상의 시 가운데서 한진수의 ‘포플러’를 당선작으로 선택한 것은 그 시가 오늘의 우리 시가 가지고 있는 답답함을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가졌기 때문임을 말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