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아픔이 기쁨으로”…한국의 첫 금메달 선사한 김우진

-‘신궁’이라 불리던 양궁 천재 옥천의 아들

2016-08-07     신홍경 기자

세계랭킹 1위. 명궁 김우진(24·청주시청)의 화살은 10점 과녁에만 꽂혔다.

리우 올림픽 한국 첫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 남자 양궁팀의 중심에는 충북출신 ‘신궁’ 김우진이 있었다.

김우진은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의 아픔을 이번 올림픽에서 씻어낸 것 같다”며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그동안 기다려왔던 순간들을 맞이한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옥천 이원초 4학년 때 처음으로 활을 잡았다.

양궁선수를 하고 있던 형(25)을 따라 시작한 운동이지만, 김우진은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해 불과 1년 만에 충북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막노동과 농사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부모 밑에서 형제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꿋꿋이 훈련에 전념, 헝그리 정신을 보여준 그는 국내 모든 대회를 석권했다.

옥천 이원중에 진학해 2007년부터 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기록, 충북체고 재학 당시에는 전국체전에서 한국 타이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국제무대 데뷔전이던 국제양궁연맹(FITA) 월드컵 3차 대회에서도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우진은 이후 청주시청에 입단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과 개인전 등 2관왕에 올랐으며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해 모두가 한국 남자 양궁의 세대교체를 이끌 재목이라고 주저 없이 꼽았다.

그러나 2012년 런던올림픽 선발전 문턱을 넘지 못 했다. 마지막 관문이었던 세계양궁연맹(WA) 터키 안탈리아 월드컵 성적에서 밀려 최종 대표 3명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에)승승장구하면서 스스로에게 취했었던 것 같다”며 “런던올림픽 때에는 양궁도 그렇고, 아예 TV를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4등으로 탈락한 뒤 슬럼프가 왔다. 전국체전에서 60명 중 55등을 할 정도였다”면서 “다시 대표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다른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런던올림픽 대표팀에서 탈락한 것이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이후 지독한 연습벌레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승승장구한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어려웠던 과정이 나를 더 단단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초심을 찾았고 4년 뒤 찾아올 리우 올림픽을 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다.

김우진은 탈락 요인이라 분석한 부담감, 욕심, 자만, 집착 등의 감정들을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했고, 지난해 코펜하겐 세계선수권 남자 개인·단체전에서 2관왕, 리우 프레올림픽 개인전 1위를 차지하며 세계 1위로 복귀했다.

김우진은 올해 4월 끝난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남자부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이번 올림픽 예선전에서 72발 합계 700점을 쏴 4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임동현(청주시청)의 699점을 뛰어넘는 세계신기록도 세웠다.

8일부터 시작되는 개인전도 기대를 모은다.

김우진이 개인전 금메달도 거머쥐면 올림픽 양궁에서 2관왕을 차지한 두 번째 남자선수가 된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저스틴 휴이시(41·미국)가 유일하다.

김우진은 “개인전도 단체전과 같다고 생각한다. 나 살겠다는 동료들을 밟는 건 안 된다. 선의의 경쟁을 해서 셋 중 누구든 좋은 결과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양일보 신홍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