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게이트(-gate) <경철수>

경철수(정치경제부장)

2016-11-20     경철수 기자

게이트(-gate). 추문, 스캔들을 뜻하는 이 말이 요즘 한국사회를 뒤덮었다. 그것도 대통령의 최측근이 국정에 개입해 온갖 사리사욕을 채운 사실이 검찰수사에서 속속 밝혀지면서 온 국민이 ‘순실증’에 걸릴 정도로 ‘최순실 게이트’는 허탈감을 안겨주고 있다.
정치권에서 게이트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2년 6월 미국의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 Affair)이 처음이라고 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Richard Milhous Nixon)은 재선을 위해 비밀공작반을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투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결국 하야했다.
게이트란 말은 바로 이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따온 것이다. 이때부터 정부 또는 정치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 의혹사건이나 스캔들 또는 그러한 불법행위 등을 말할 때 흔히 ‘OO게이트’라고 이름 붙여 부르면서 일반 접미사처럼 써 왔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최근 사설에서 ‘최순실 게이트’를 ‘한국판 클린턴 스캔들’로 규정하며 힐러리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꼬집어 미국 대선판도에 영향을 끼쳤다는 후문도 있다. WSJ는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를 ‘영세교를 이끄는 대통령의 40년 심복이자 절친한 친구인 최순실 스캔들이 중심에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한국 국민이 느끼는 분노의 원인을 재벌개혁 실패로 보고 2012년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경제 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취임 이후 재벌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봤다.
박 대통령이 1960~1970년대 한국 고도 경제성장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힘입어 뽑혔지만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으며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해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현재 ‘100만 촛불 민심’과는 달리 퇴진을 완강히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일각에선 억울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 제대로 된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촛불 민심은 박 대통령이 최대한 시간 끌기로 정국을 지켜보며 민심의 반전 드라마를 기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조차도 어려워진 듯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해 온 검찰은 20일 중간수사발표에서 대통령을 사실상 공범으로 피의자 신분의 조사대상으로 못 박았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의 첫 검찰수사가 현실화 돼 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아마도 그동안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 전 대통령보다는 성추문으로 탄핵을 받았다가 기사회생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길을 가기로 작심한 듯하다. 클린턴은 1995년부터 1년 반에 걸쳐 당시 21세였던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백악관 집무실에 딸린 작은 방에서 10여 차례에 걸쳐 오럴 섹스를 한 것으로 특별검사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는 위증, 사법질서 방해, 증인 회유, 권력 남용 등 11가지 죄목을 들어 미 의회에 클린턴의 탄핵을 요청했다.
미 하원은 1998년 12월 19일에 탄핵안을 가결했다. 하원에선 단순 과반수면 탄핵안이 통과된다. 그러나 상원은 100명의 의원 중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미 상원이 1999년 2월 12일 실시한 표결에서 위증 부분에 대해선 여당인 민주당 의원 45명과 공화당 의원 10명 등 55명이 ‘무죄’로 판단했고 사법 질서를 방해한 혐의에 대해선 찬성 50, 반대 50으로 갈렸다. 모든 혐의에서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67명)의 찬성표가 나오지 않았다. 클린턴은 상원의 탄핵안 부결로 살아나 2001년 1월까지 무사히 임기를 마쳤다.
박 대통령이 클린턴처럼 탄핵 과정을 통해 살아날지, 아니면 닉슨처럼 하야할지를 결정하는 열쇠는 결국 국민이 쥐고 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클린턴의 성적 일탈행위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탄핵 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클린턴의 지지율은 당시 높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겨우 한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