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스펙 초월해 기술로 인정받은 사람들…

856명의 대한민국명장·기능한국인·숙련기술전수자 중…
충북 거주자 19명 뿐…능력중심사회 롤모델 예우해야

2016-12-29     경철수 기자

(동양일보 경철수 기자)동양일보는 창간 25주년을 맞아 기계화, 첨단화에 묻혀 산업현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숙련 기술인(기능인)들을 찾아 예우하는 의미로 충북거주 대한민국 명장과 기능한국인, 숙련기술전수자들의 최근 근황을 들어봤다.<편집자>

●총 616명 중 충북거주 명장 8명…기능대회 1위 입상자 명칭 효시

대한민국명장은 ‘숙련기술 장려법’ 11조에 의해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로서 15년 이상 해당 분야에 종사하며 숙련기술 발전 및 숙련 기술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명장으로 선정, 우대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1986년 전국기능경기대회의 명장부 경기에서 1위 입상자에게 명장 칭호를 부여한 것이 시작이다. 처음 24개 분야 170여개 직종에서 명장을 선정했으나 2012년부터 22개 분야 96개 직종으로 통·폐합해 매년 선정, 시상하고 있으며 적격자가 없으면 뽑지 않는다.

대한민국명장은 기계, 재료, 화공, 전기, 전자, 통신, 조선, 항공, 토목, 건축, 섬유, 광업 자원, 정보 처리, 농림, 해양, 산업 디자인, 에너지, 안전 관리, 환경, 산업 응용, 공예, 서비스 등 22개 분야에 현재 616명이 선정돼 있다.

이중 충북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명장으론 1995년 가구제작 분야 명장으로 선정된 이성준(72) 명장을 시작으로 2000년 서동규(77·도자기 공예)·안순일(68·전기), 2001년 오천택(65·세라믹), 2002년 이순용(63·귀금속 가공), 2007년 김종고(57·철도동력차전기정비), 2008년 김성호(60·칠기), 2009년 박동복(63·종자) 명장까지 모두 8명이다.

대한민국명장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후학 양성을 위한 기술전수 교육에 앞장서 왔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한 청소년 직업진로지도 사업에선 지난해 말 기준 총 793회 중 294회(37.1%) 강사로 참여해 숙련기술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중소기업,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 등에 기술을 지원하는 산업현장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스펙을 초월해 기술력으로 인정받은…기능한국인 118명중 충북엔 단 3명

우수 숙련 기술인을 선정하는 대표적인 제도에는 ‘대한민국명장’과 함께 ‘이달의 기능한국인’이 있다. 2006년 8월부터 시작,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이달의 기능한국인’ 제도는 10년 이상 산업체 현장실무 숙련기술 경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능인을 매월 한 명씩 선정, 포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118명이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충북에선 고졸신화의 주인공인 이명재(60) ㈜명정보기술 대표(2011년)와 이준배(48) 전 ㈜제이비엘 대표(현 아이빌트 세종 대표·2014년), 안혁(56) 대원정밀 대표(2015년) 등 3명이다.

명정보기술의 이 대표는 금오공고를 졸업하고 다국적 기업인 AMK에 다니며 쌓은 기술과 영업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이터 복구회사인 지금의 명정보기술을 창업했다.

제이비엘의 이 전 대표는 충남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금성계전(현 LS산전)에 입사, 제품 설계 엔지니어로 10여년 간 일한 경험을 살려 전량 외국에서 수입해 오던 화폐식별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종잣돈 300만원으로 제이비엘을 창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원정밀의 안 대표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인 풍산금속㈜과 삼성종합기술원에서 키운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업 후 2차전지 분리막 기술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제조원가 절감에 크게 기여했다.

대한민국명장과 기능한국인은 특성화고나 직업훈련기관 등을 졸업한 후 바로 기술직에 입문, 고유의 숙련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퇴직 연령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22명 숙련기술자 선정·활동…충북은 8명 뿐 올해 선정자 없어

숙련기술 장려법 13조에 의해 산업현장의 숙련기술을 전수하려는 사람과 그 숙련기술을 전수 받으려는 사람을 선정, 지원해 숙련기술의 발전과 숙련기술의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한 숙련기술전수자 제도는 3개 분야 20여개 업종에서 15년 이상 종사한 숙련기술 전수자를 선정, 시상하는 제도다.

제조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금형, 열처리, 표면처리, 주조, 소성가공, 용접부터 산업현장에 적합하게 창의적으로 응용, 발전시킬 수 있는 기계조립, 판금·제관, 전기, 창호제작, 신소재, 전자기기 등이 있다. 또 세대 간 단절 우려가 있어 전수가 필요한 떡살제작, 건칠, 세공조각, 전통장석제작, 다회(多繪), 전통자수공예, 지호공예, 세화(歲畵) 등이 있다.

숙련기술전수자는 전국적으로 122명이 선정됐으며 충북에선 1995년 최용진(67·대장간), 1997년 김남호(72·참숯제조기능), 2000년 이대길(95·수레제작), 2001년 신명식(63·전통벼루), 2002년 강태생(92·짚공예), 2003년 박종덕(65·소반), 2010년 이민우(57·수레제작), 2014년 한상묵(59·전통먹) 등 8명의 전수자가 선정돼 활동하고 있다.

이재길 한국산업인력공단 충북지사장은 “숙련기술인은 기술과 실력만으로 최고의 전문가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능력중심사회의 롤모델”이라며 “올해 충북에서 숙련기술인이 한명도 나오지 않아 안타깝지만 이미 선정된 우수 숙련 기술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우리 사회에서 적극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경철수>

 

“품질 넘어 기능성 식품시대 도래”

박동복 종자분야 대한민국명장

박동복(63·사진) 제일종묘농산 대표는 2009년 기능성 종자로 대한민국명장 반열에 올랐다. 그를 지난 23일 증평군 증평읍 도안면 그의 농장에서 만났다. 박 명장은 “농작물 생산량으로 승부를 걸던 배고프던 시절은 끝났다”며 “건강한 먹을거리(유기농)를 강조하던 품질의 시대를 넘어 이제 기능성 식품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명장은 2005년 항암쌈채를 시작으로 2008년 당조고추(당조절고추), 2011년 항암배추, 2014년 항암순채까지 각종 기능성 종자분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가 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숙면상추를 내 놓기 위해 연구중이다.

항암쌈배추는 배추와 순무의 종간교잡으로 항암 성분으로 알려진 베타카로틴과 글루코나스투틴이 일반 배추보다 다량으로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보다 육종기술이 10년은 앞선다는 일본에 수출되는 효자상품이다.

식후 혈당을 억제하는 물질인 AGI를 다량 함유한 것으로 알려진 당조고추는 지난 1년간 일본에 6t이 수출되기도 했다.

박 명장은 “기능성 종자는 효자 수출품목인 반도체에 버금간다”며 “1알에 200원, 한줌에 100만원 가까이 하니 이를 앞으로 일본과 중국 등에 6t이 아니라 60t 이상을 수출한다고 할 때 ‘첨단반도체’가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박 명장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며 “앞으로 질병 예방차원의 기능성 종자 생산 및 농작물로 ‘노벨상’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예방차원의 기능성 농작물로는 캡사이신 함유량을 높인 ‘다이어트 고추’, 체질개선과 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조기폐경을 예방하는 ‘비아그라 고추’ 등이다.

그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누가 시켜서 ‘대동여지도’를 그린 것이 아니듯 ‘인류의 건강’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능성 종자 개발에 매진할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박 명장은 “의식동원(의약과 음식은 하나다)이란 말에서 기능성 종자 개발에 나섰듯 개인 육종가로서 270여종의 신품종을 보유하고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농업의 6차산업화, 스마트 농업을 통해 세계 1등 부농의 꿈을 키워볼 생각”이라며 “콩 심은데 콩 난다는 옛말처럼 농민들이 우리 종자에 대해 신뢰가 높은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이 같은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내년 팔만대장경 인쇄본 복원 시작”

한상묵 전통먹 숙련기술전수자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2014년 전통먹 숙련기술전수자로 선정된 한상묵(59·사진) 전수자를 지난 23일 음성군 음성읍 초천리 그의 취묵향공방에서 만났다.

한 전수자가 6년 전부터 산중지기가 된 데는 충북도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박문열 청주대 대학원장이 ‘충북에 문방사우(文房四友) 중 한지(紙)와 붓(筆), 벼루(硯) 등은 있는데 먹(墨)이 없다’며 이주를 권유한데서 비롯됐다.

한 전수자는 처음 청주근교를 이주지로 생각했지만 땅값이 비싸 포기하고 지금의 음성읍 초천리를 찾게 됐다.

한 전수자는 “음성IC 인근에는 먹뱅이 마을도 있고 해서 예전에 먹을 만들던 곳이라 나름 의미도 있다”고 전했다.

한 전수자는 “먹 장인들은 예부터 수요가 많은 큰 마을 주변이나 향교 인근에 가마를 두고 만들었다”며 “숯가마가 강원도 산골짜기에 많지만 먹 장인들의 가마가 산중에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한 전수자는 전국 먹 공예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자부심이 강하다. 특히 그는 소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그을음을 기름에 개어 만드는 송연묵이나 콩과 깨 등을 태울 때 나오는 그을음을 식물성 기름에 개어 만드는 유연묵 등 전통먹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한 전수자는 “다른 공예는 재료에 새겨서 작품이 나오지만 먹 공예는 없는 재료를 만들어 예술작품을 만들게 된다”고 말했다.

한 전수자는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청주 흥덕사지에서 인쇄가 됐다는 것은 그만큼 훌륭한 먹장인이 청주에 살았다는 증거”라며 “수성잉크만 쓰던 유럽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찍어낼 수 있었던 데는 고려의 송연묵(송먹) 기술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한 전수자는 “중동 정세가 좋지 않아 지난해 9∼10월께 사우디정부, 할랄협동조합과 함께 추진하던 한지에 코란을 인쇄해 납품하는 일은 무기한 연기됐다”며 “문화재청 지원과 해인사 협조로 추진하는 팔만대장경 인쇄본 복원은 내년에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