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컸던 ‘귓속말’… 아직 설익은 드라마

긴장감 못 살린 이야기·캐스팅 부조화

2017-04-02     연합뉴스

 

설익었다.

2회밖에 방송되지 않아 섣부른 감이 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첫술에 배부를 줄 알았다.

처음부터 속도를 올렸고 ‘강공’ 일색으로 진행됐지만, 이야기와 긴장감이 따로 논다. 물과 기름처럼 드라마에 흡수되지 않는다.

박경수 작가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 SBS TV 새 월화극 ‘귓속말’이 단번에 시청자를 사로잡지는 못했다.

아직 예열에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 구멍난 연기·경직된 분위기

일단 연기에 구멍이 있다. 구멍이 꽤 크다. 좋은 대본이 좋은 연기자를 만드는데, 이번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심지어 ‘좋은 대본’인지도 더 지켜봐야 한다.

이보영에 이어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박세영의 연기는 매순간 손발이 오그라들게 한다.

박세영이 맡은 ‘최수연’은 어려운 역도 아니다. 금수저이지만 머리가 나빠 사법고시를 4번 떨어졌다. 돈을 휘감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지만 클럽에서만 노느라 영어도 못한다. 얄밉지만 어느 정도 매력을 발산해야 하는 캐릭터다.

비뚤어진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금수저 철부지가 그간 드라마에서 발에 챌 정도로 많이 등장한 것을 감안할 때 박세영은 기본 이상을 보여줘야하지만, 시청자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리게 한다.

이보영이 연기하는 ‘신영주’와 결혼할 뻔했던 ‘박현수’ 역의 이현진은 아무리 접고 들어가도 이보영의 상대가 못 된다. 이보영과 함께하는 투샷에서 이현진은 누나와 얘기하는 막내동생 같은 느낌을 준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것.

쟁쟁한 중견 배우들은 한명 한명 묵직한 존재감을 전해주지만 융화되지 못한다. 저마다 권력욕과 재물욕에 사로잡힌 캐릭터라 그 자체가 ‘연극적’인 면이 강조되긴 했지만, 한 데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따로 노는 느낌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경직됐다.

특히 김창완은 최근 너무 비슷한 캐릭터를 자주 보여줘 “이제 그만!”을 외치고 싶게 만든다. 야비하고 음흉한 캐릭터를 잘해내긴 하지만, 변주 없이 매번 똑같은 모습을 보여줘 물리게 한다.

김뢰하가 또다시 거부의 밑에서 일하는 조폭으로 나오는 것도 너무나 식상하다.

이와 반대로 누구 하나의 연기가 기가 막힌다는 평가는 아직 안 나왔다. 대다수가 제자리를 잡지 못한 느낌이다.

이야기도 마찬가지. 휘몰아치는 전개는 알겠는데, 이상하게 숨가쁘지가 않다. 충격적 스캔들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이 더 충격적이어서인지 딱히 놀랍지 않다.

2회까지 공개된 ‘귓속말’은 내내 주먹에 힘을 잔뜩 쥐었지만 제대로 펀치를 날리지 못하고 링 위를 바삐 뛰어다닌 복서와 같은 모습이다.

 

● “악은 성실하다”…명품 드라마를 기대해

2012년 ‘추적자’, 2013년 ‘황금의 제국’, 2015년 ‘펀치’까지 박경수 작가는 탄성을 자아내는 명품 대사와 사회 풍자로 시청자를 즐겁게 했다.

시종일관 인간의 탐욕에 메스를 들이대며 살 떨리는 긴장감을 유지해온 박 작가는 힘 있는 스토리와 살아있는 캐릭터 플레이로 감탄을 자아냈다.

‘귓속말’은 법을 이용한 도적무리를 ‘법비’라고 규정하고, 법 위에서 뛰어노는 자들과 그들에 기생하는 자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드라마는 설익었지만 명대사는 벌써 하나 탄생했다. “악은 성실하다”.

악은 살아남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집요할 만큼 성실하게 움직인다. 선량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악은 부지런하고 치밀하다는 의미가 가슴에 팍 와서 꽂힌다.

“이 세상의 권력은 다 나쁜 놈들이 가지고 있더라고요”는 사실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말이지만, 다시 들으니 울분이 치솟는다.

“기다려라. 가만히 있어라. 그 말 들은 아이들은 아직도 하늘에서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겠죠”, “곧 대통령 주치의가 바뀐다는 소문이 있다. 청와대 사람들 다 최 대표 사람들이다. 너가 최 대표 식구가 되면 아빠가 VIP 의료진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의료 민영화와도 관련 있다” 등은 박 작가가 현실을 작정하고 풍자한 대목이다.

하지만 목이 마르다. 좀더 명치를 강타하는 대사와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한다. 박경수니까.

박경수 작가는 화수분처럼 샘솟는 탐욕으로 몸이 달아오른 자들, 언제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양심은 발밑에 깔아뭉갠 채 오로지 개인의 영달과 부를 위해서만 달려가는 자들의 이야기를 고품격으로 그려낼 줄 아는 작가다.

‘귓속말’이 박 작가가 ‘삐끗’하는 작품이 될지, 초반의 어수선함을 딛고 또다시 성공하는 작품이 될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