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 / 푸른 말이 물든다
김병기
2017-04-30 동양일보
푸른 말들이 물들이고 지나가는 새벽
질주하는 속력은 몇 개의 바람을 가르고
나는 이백만 년을 견딘 지층으로 압축되고
곪아터지는 몇 겹의 긴 편지를 읽는다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요 헤어졌던가요
빳빳한 말의 귀두는 사정을 해야 할 곳을 잃어
젖꼭지를 가만히 만지던 추억을 방사한다
어제 그는 망가진 자궁을 들어냈다
집을 거쳐 간 잡것에 대한 회한을
(참을 수 없는 흠집이거나 희망인)
봉합하고 새로운 집을 짓는 거미처럼
허공에 살랑거리는 바람을 채집하는
노동의 결구에 대하여 생각한다
병든 말의 환부를 투명하게 닦으며
주먹만한 宮이 끝내 허물어지면
집은 완성되리라 사랑이여
죽음이란 아름다운 해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