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눈길 두고 희망 노래하는 시인 되고파”

■ 23회 지용신인문학상 강성원씨

2017-05-08     김재옥 기자

(동양일보 김재옥 기자)알맞은 시적 변용과 언어의 묘미를 잘 살린 탁월한 수준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강성원(본명 강성재·사진·57·전남 여수시 소호로)씨의 작품 ‘호른 부른 아침’이 23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동양일보와 옥천문화원이 주관하고 옥천군이 후원하는 ‘지용신인문학상’은 한국시문학사의 우뚝한 봉우리 정지용 시인을 기리고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시인 발굴을 위해 제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전 11시 옥천군청에서 열리며 수상자에게는 상금 500만원이 수여된다.

다음은 낮은 곳에 눈길을 두고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강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당선작 ‘호른 부는 아침’은 어떻게 탄생한 작품인지.

처음엔 ‘바닷가 빈집’으로 시 한 편 쓰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어느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사람이 살다 떠난 흔적을 남겨두고서 허물어져 가는 빈집의 모습이 너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주 가는 푸른 바닷가 백사장을 천천히 거닐면서 하얀 조개껍데기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나비의 날개를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모시조개가 제 살을 비우고 날아오를 듯 흰나비로 앉아 있다.’는 시행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해안을 둘러보니 메꽃이 피어 있고 해풍에 꽃잎이 가늘게 떨리는 것도 보였습니다. 저 자신이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갯가에 핀 메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메꽃을 보면 나팔꽃을 닮았다는 생각이 살아오면서의 고정관념이었는데 다시 이미지를 확장해서 생각해 보니 관악기인 호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줍게 떨리는 모습은 첫사랑 입술 같기도 했습니다. 해무 속에 모래톱 위를 종종종 걷는 물떼새, 파도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이 도레시 라솔미 음악을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해변의 이미지가 시각과 청각으로 느껴지고 시간은 일출로부터 시작해서 내면으로 천천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해안선이 멀리 발걸음을 옮겨가고 있는 바닷가 풍경, 저는 빈 모시조개껍데기에 나비의 영혼을 불러들이고 피고 지는 메꽃의 모습을 통해 사랑과 유기적인 생명사상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제목은 ‘메꽃이 피어 호른을 분다.’ 시행을 함축하여 마지막으로 정했습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있는지.

음양의 조화를 위한 시어 선택이나 한 편의 시가 독자에게 완성된 그림으로 인식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색채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20살 때부터입니다. 학창시절 그 흔한 백일장 대회에도 한 번 나가본 적이 없는 저는 무작정 기존 시인의 시집과 이론서를 서점에서 사다가 독학으로 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지역의 20대들로 구성된 문학단체 신입회원 모집 공고를 보고 가입하였고 12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모 문예지 신인상에 도전하였지만, 본심 심사평 한 줄을 받아 들고 낙담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넘치고 모자라기 때문에’ 당선에 들지 못했다는 평은 평생 화두가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에 도전한 신춘문예, 그러나 새해 벽두 신문을 통해 읽게 되는 낙선 심사평 한 줄의 쓰라림…. 좋은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꾸었지만, 재능 없음을 인정하고 그만 펜을 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는 15년간 절필하며 온전한 생활인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이루지 못한 나의 꿈,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이 일어 다시 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시의 소재는 어디서 얻는지.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가 닿아 감동을 주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얻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마주하는 산, 들, 바다 이런 거창한 소재들이 아니라 내가 자주 가는 국밥집, 공연하는 친구, 고기 잡는 어부, 길을 걷는데 우연히 따라오는 고양이 등등 살아서 만나는 사람들과 생물에서 시를 추구합니다.

 

-평소 정지용 선생, 또는 그 분의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현대시를 개척한 선구자이시며 뛰어난 서정시인으로 이미지 묘사에 탁월한 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어로는 그 맛을 낼 수가 없어 대체되지 않는 시어들, 특히 잊혀 가는 고어나 방언을 시에 차용함으로써 사라지는 우리말을 시 속에서 영속되게 되살려내고 재창조한 점은 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꼭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인이 되고 싶은지.

일찍이 정지용 시인께서는 ‘옥에 티나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하나야 버리기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 말 한 개 밉게 놓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또한 단어 하나라도 옥석으로 갈고 닦아 따뜻한 시어를 창조해 내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어디에 있든 삶이 곧 문학이라는 인식을 내려놓지 않으며 낮은 곳에 눈길을 두고 희망을 노래한 시인, 태생이 바다이므로 해양문학으로 지평을 넓힌 시인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당선 소감>

오월의 하늘 아래 빛들의 산란이 꽃처럼 눈부신 이 봄날 무뎌진 시상과 각이 흘러내리는 어깨 위에 기꺼이 죽비를 내려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과 지용신인문학상 운영위원회 관계자님들 그리고 동양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써오는 동안 이곳저곳 등단이라는 유혹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되뇌면서 견뎌왔기에 오늘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이 맺어진 찬·민 두 아들과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다시 일어서서 이 길이 내 운명임을 알고 생이 끝나는 날까지 깊어지고 멀리 가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무작정 문학공부를 시작했지만 내 시의 첫 발원지이자 큰 바다라 할 수 있는 젊은 날의 해맥문학동인들 그리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지금의 문우님들께도 시로써 아침 인사를 드립니다.

제 시가 이제 막 피어나는 들꽃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의 무게였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눈가에 슬픔도 없이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선작-호른 부는 아침

붉은 바닷가의 집

녹색 커튼을 살며시 열어보는 아침 해

내려다보는 백사장엔 모시조개가 제 살을 비우고

날아오를 듯 흰나비로 앉아 있다

먼 길 가려는 바람은 물너울을 타고 온다

모래톱 위를 종종종 걷는 물떼새

안개는 빨판을 달고 배 한 척 붙들어 놓지를 않는다

 

길을 내려가 보면 바다가 보여주는 손바닥

잠든 바위를 깨우다 시퍼렇게 멍이 다 들었다

파도는 모래사장에 음표를 새겨두고

도레시 라솔미 오르내린다

바다가 들려주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음악

사랑이란 단어를 적어 넣으면

오선지 위에서 저토록 따뜻하게

꽃으로 피는 말이 있을까

 

바다를 향해 걸어가다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춘 해안선

메꽃이 피어 호른을 분다

맨 처음 입술을 열 때 첫사랑이 저랬을 것이다

한 잎 수줍은 입술이 파르르 떨다

천천히 입을 오므린다

 

■ 심사평

알맞은 시적 변용·언어 묘미 잘 살려

해조음 들려오는 한적한 바닷가 정경

한순간에 포착해내는 솜씨 놀라워

독창적 시적 구성·참신한 이미지 전개

신인작품 범주 뛰어넘는 대단한 성취

올해 지용 신인문학상 응모작품을 심사하면서 새삼 정지용 시인이 우리 현대시사에 끼친 상당한 영향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시의 위의와 품격을 누구보다 강조한 지용은 갑남을녀가 쓰는 생활어를 빼어난 시적 언어로 재구성하여 당대에는 물론 그후 오늘날까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하는 드높은 높이까지 밀어올린 현대시사의 상징적 시인이 되었다. 지용은 청록파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모든 시인 지망생에게 하나의 교과서 같은 문법을 제시해주었고 우리 현대시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 온 것이었다.

해마다 방방곡곡에서 지용신인문학상에 응모하는 수백명의 신인들도 지용시가 지닌 이러한 문학사적 가치를 모두 다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용신인문학상’이 흔히 있는 하나의 문화행사를 뛰어넘어서 오늘 이 시점의 문학적 역량을 살피고 우리 현대시의 수준과 안목을 표출해주는 중요한 문학적 이벤트가 된다는 점은 여타의 신인 문학작품 현상모집과는 뚜렷하게 변별되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최종적으로 논의 된 작품은 ‘호른 부는 아침’(강성원/여수), ‘나이테’(박성수/광주), ‘소나무 방정식’(오정숙/서울), ‘말수’(신용대/대전) 네 편이었다. 다 나름대로의 개성과 시적 성취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으로 습작의 일반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들이었다.

이 가운데서 강성원의 ‘호른 부는 아침’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이 작품은 아주 알맞은 시적 변용과 언어의 묘미를 잘 살린 탁월한 수준이어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해조음이 들려오는 한적한 바닷가의 한 정경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치미 떼면서 한순간에 포착해내는 놀라운 솜씨는 가히 일품이었다. ‘제 살을 비운 모시조개-물너울을 지나 부는 바람-모래톱 위의 물떼새-찰싹찰싹 대며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가 그리는 모래사장 위의 오선지와 음표들- 호른을 부는 메꽃’. 이와 같은 독창적인 시적 구성과 참신한 이미지의 전개는 신인작품의 범주를 뛰어넘는 대단한 성취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쉽게 당선권에서 밀려났지만 나머지 세 분의 작품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나이테’와 ‘소나무 방정식’은 반듯하고 정직하게 시적 진실을 토로해주고 있어서 가슴을 뭉클하게 했지만 시적 여운 같은 게 없이 너무 곧이곧대로 시의 주제를 표면에 내세워서 아쉬웠다. ‘말수(唜樹)’는 아주 독특한 상상력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이채로웠다. 제목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나무라는 뜻으로 이해되지만 시의 주제가 잠언적인 관념 속으로 함몰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지용신인문학상에 응모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들에게 뜨거운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