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4) 타임캡슐로 가는 택시
타임캡슐까지 가려면 흥정이 필요하다. 환갑 넘긴 택시엔 미터기가 없다. 손으로 힘겹게 내린 유리문 통해 서툰 대화가 오간다. 운전기사와 가난한 여행자가 벌이는 최초의 밀당이다. 관광객들은 달라는 대로 주고 타는 게 다반사다. 가난한 여행자는 그러기 쉽지 않다. 처음 제시한 절반쯤 금액으로 실랑이를 벌인다. 입맛 다신 운전기사가 엄지를 세워 차 시트를 가리키고, 나는 덜렁거리는 문고리를 조심스레 쥔다. 장석 헐렁한 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올 것 같다. 그걸 직감한 운전기사가 손을 내젓고 내 몸은 감전된 듯 차에서 급히 떨어진다. 그가 몸을 옆으로 기울여 열어준 문 틈새로 바닥이 꺼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레 발을 올린다. 빈 공간으로 어깨 내민 운전기사가 문을 힘줘서 당긴다. 작은 진동에도 차는 한참 동안 울렁거린다. 지나치는 차에서 요란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기분대로 발 구르다간 몸이 도로에 툭 떨어질 것만 같다. 말레꼰 따라 달리는 차는 그래서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 불안감 껴안고도 여행자는 이방의 풍경을 시선에 담기 바쁘다.
타임캡슐까지의 거리는 종잡을 수 없다. 숱하게 대화가 오가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몇 개뿐이다. 카리브해 파도가 도로까지 도움닫기하고, 말레꼰의 검은 색 대포는 가슴마저 쫀쫀하게 한다. 포장한 지 오래된 도로는 여행자를 공깃돌 삼아 허공에 날리기도 한다. 그걸 통과하면 앞차가 내뿜는 매연이 허들처럼 유리를 시커멓게 가린다. 열린 차창으로 날아드는 기름 냄새엔 코를 막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 만나는 건 움직이는 빨간 신호등이다. 길 가운데 소몰이꾼 따라 뚜벅뚜벅 걷는 소들이 보여서다. 막 농사일 끝낸 그들 걸음에서 삶을 관조하는 지혜가 드러난다. 소 두 마리 등을 엮어 맨 농기구에서 쿠바 농업의 역사를 읽는다. 장애물 넘기가 운전면허 시험 과목에 포함된 걸까. 운전기사는 변화무쌍한 장애물을 잘도 피해 나간다. 재산 목록 1호인 택시가 멈춰서면 밥줄이 끊어지는 탓이다.
택시 속도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 속도계 바늘은 오래 전 떨어져 구멍이 메워져 있다. 타임캡슐에 다가가는 속도는 알 필요 없단 뜻일까. 아날로그시계, 라디오, 오일 온도계, 오일 압력계, 연료량계, 배터리 방전 경고등, 타코미터들이 한갓 장식처럼 보인다. 제각각 바늘이 달려 있지만 믿을 수도 없다. 계기가 몇 바퀴를 돌아 멈춰선 것일까. 주행거리 표시 아리비아 숫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흥정 마친 요금에는 불안함을 달래줄 대가가 계산되지 않았다. 요금을 깎으려고 시도하지만 차는 이미 목적지에 다다른 것 같다. 고개 돌린 운전기사가 내게 손을 내민다. 타임캡슐 주소를 보여 달란 제스처다. 쪽지를 받아 든 그가 손가락으로 건물들 틈으로 난 골목을 하나하나 센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가니 하얗게 칠한 바위가 보인다. 인도 가장자리 하얗게 칠한 바위를 이정표 삼아 검은 글씨로 쓴 블록 표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차가 골목으로 접어들고, 낡아서 건물이라 부르기에 애매한 집 앞에 멈춘다. 나는 운전기사가 열어준 문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내린다. 골목을 휘돌아 온 바람 냄새가 낯설지 않다. 곳곳의 문화가 뒤섞인 타임캡슐 속엔 동양의 체취도 들었을 것 같다.
타임캡슐이라 적힌 초록색 간판에 바짝 다가선다. 이방의 색깔이 눅눅한 바람에 펄럭거린다. 자세히 보니 어디선가 날려 온 과자봉지다. 관광객은 타임캡슐 겉모습만 훑다가 과자봉지만 버리고 돌아갔다. 60년 전 타임캡슐을 들여다보기엔 지나치리만치 견고했겠지. 세월을 견디다 못해 바늘마저 빠진 건물 중앙의 시계, 흔적이나마 남겨진 게 어딘가 싶다. 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타임캡슐, 주인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 캐리어가 무거울 거라는 걸 알면서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다. 감질나게 기내식을 먹어 입술이 바짝 마른 상태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든다. 이제부터 여행 시작인데 어쩌랴. 배고파서 잠이 오기나 할까. 유기농 천국에서 컵 라면 먹는 불상사를 겪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걱정이 여행길 초입을 막아선다. 타임캡슐 향한 여행이 쉽지 않다는 걸 바늘 빠져 나간 계기가 가리키고 있다. <계속>
*타임캡슐: 60년 전 유물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쿠바. 민박집 까사는 여행의 출발지여서 그렇게 이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