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짝처럼 버려진 소녀들…조선인 위안부 학살 영상 최초 공개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 총살”…미군기록 뒷받침하는 증거 찾아

2018-02-27     박장미 기자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후 짐짝처럼 버려진 조선인 위안부들의 처참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최초로 공개됐다. 조선인 여성 30여명이 일본군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미군 기록을 뒷받침 하는 증거영상이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3.1절 99주년을 기념해 27일 개최한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콘퍼런스에서 일본군의 조선인 위안부 학살 영상을 공개했다.

18초 분량의 짧은 이 영상에는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후 한꺼번에 버려진 참혹한 모습이 담겼다. 널브러진 시신들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시신을 매장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중국군 병사가 시신의 양말을 벗기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 영상은 일본의 아시아·태평양 전쟁 패전 직전인 1944년 9월 중국 윈난성 텅충(騰沖)에서 미·중 연합군이 찍은 것이다.

미·중 연합군은 1944년 6월부터 중국-미얀마 접경지대인 윈난성 쑹산(松山)과 텅충의 일본군 점령지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같은 해 9월 7일 쑹산을, 일주일 뒤인 14일엔 텅충을 함락했다. 당시 이곳엔 일본군에 끌려온 조선인 위안부 70∼80명이 있었다.

영상을 촬영한 날짜는 텅충 함락 다음 날인 1944년 9월 15일이다. 함락 당시 연합군에 포로로 잡혀 생존한 23명을 제외한 조선인 위안부 대부분은 일본군이 학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상을 발굴한 정진성 교수 연구팀은 “패전이 임박하자 당시 일본 작전참모였던 츠지 마사노부는 쑹산·텅충 주둔 일본군에게 ‘지원 병력이 도착하는 10월까지 계속 저항하라’는 사실상의 ‘옥쇄(강제적 집단자결)’ 명령을 내렸다”며 “이를 거부한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부 민간인과 함께 학살당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은 연합군의 기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연구팀은 앞서 텅충이 함락되기 직전인 1944년 9월 13일 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고 기록한 연합군 정보 문서를 발굴해 공개한 바 있다.

연구팀은 이 영상을 “(1944년 9월 13일 밤)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는 내용이 담긴 미·중 연합군의 문서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보고 있다.

일본군이 위안부를 학살했다는 증언, 기사 등이 공개된 적은 있지만 학살 현장을 담은 영상이 세상 밖으로 나온 적은 없었다. 서울대 연구팀은 2016년 위안부 학살 현장 사진을 발굴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도 이곳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과 영상 속 시신의 옷차림이 같고, 시신을 수습하는 중국인 병사가 사진과 영상에도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전쟁 당시 미군 사진부대의 사진·영상 촬영 담당 병사가 2인 1조로 움직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진이 있으니 반드시 같은 장소에서 찍은 영상도 있을 것이라고 보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 조각조각 끊어진 필름더미 수백 통을 일일이 확인했다.

지난해 7월 연구팀이 공개한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영상도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됐다.

연구팀은 위안부 학살 사진을 발굴한 뒤 1년 만인 지난해 학살 영상도 찾아냈지만 바로 공개하지는 못했다. 학살이라는 주제가 워낙 민감해 분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연구팀 소속의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위안부 학살을 부정하는 상황에서 전쟁 말기 조선인 위안부가 처했던 상황과 실태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진성 서울대 교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 이후 세계 이곳저곳에서 깊이 묻힌 자료들이 발굴되고 있다”며 “이 자료들이 할머니들의 증언과 놀랍도록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