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52) / 야구라면 쿠바

2018-07-12     김득진

 남미의 따가운 햇살과 습기조차 잊게 만드는 쿠바의 야구 열기. 1864년에 네메시오 기제토가 미국 유학 중 배워 고국에 전파해서 붐을 일으켰고, 1874년 마탄사스에서 첫 공식 야구 경기가 열렸다. 그 뒤 고향 올긴 지방 리그 투수가 되었던 피델 카스트로. 미국 메이저 리그 미네소타 전신 워싱턴 세니터스에 입단하려고 오디션 받았지만 빠른 피칭 속도와 달리 나쁜 컨트롤 탓에 떨어졌다. 그가 미국 워싱턴 세니터스 투수가 되었다면 지금 쿠바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혼란스런 머리를 수습하기 어렵다. 쿠바를 사회주의 국가 롤 모델로 만들 꿈에 부풀었던 피델, 집권 후 미국식 자본주의를 몰아내고 혁명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프로 리그를 죄다 없애고 아마추어 육성에 힘을 쏟았다. 핍박받는 라틴 아메리카 민중을 구하려고 권좌를 팽개친 채 홀연히 떠난 체 게바라에 뒤지지 않으려는 듯.

혁명 과제 중엔 스포츠를 키워나가려는 목표도 있었기에 그가 한 때 몸담았던 야구에 더욱 공을 들였고, 체계적인 선수 육성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방마다 만든 아마추어 리그에다 아바나에 두 개를 합친 16개 리그가 결성됐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12, 13세 청소년을 골라 뽑아 특별 교육을 시켰다. 선진국 못잖은 야구 교육 전담 스포츠 학교에서 길러낸 선수를 국제 야구 연맹 주최 월드컵 대회에 참가 시킨 28회 대회 중 25번이나 챔피언이 되었다. 피델은 국제 경기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전쟁에 승리한 듯 목에 훈장도 걸어줬다. 쿠바 아마추어야구 리그에 소속된 팀은 3,968개, 12만 명의 선수를 거느리고 있어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놓치지 않는 게 거저 얻어진 영예가 아니다. 경제력, 군사력에선 미국에 뒤지지만 엇비슷하게 출발한 야구에서 진다면 혁명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피델은 판단했겠지.

사계절 온난한 쿠바는 계절에 상관없이 경기가 가능했고, 미국 시즌이 끝나는 겨울에도 게임을 이어갈 수 있어서 혁명 전엔 두 나라를 오가며 경기가 펼쳐졌다. 1961년 이후 미국 프로리그는 선수 기근 현상이 심각했고, 기량 뛰어난 쿠바 야구 선수를 영입하려고 상상하기 힘든 연봉을 제시했다. 그 뒤 다시는 고국에 돌아올 수 없단 말에도 돈에 눈이 멀어 숱한 쿠바 선수들이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그들 중 백인은 메이저 리그에, 흑인은 니그로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미국 프로 리그에 입단했다면 자본주의의 단맛에 길들여져 고국 땅을 밟지도 못했을 피델이 야구 선수 육성에 공들이는 동안 어떤 생각에 젖어 들었을까.

비냘레스 비아술 터미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 어디선가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좁은 도로에 접어들어 달달한 빵이며 삶은 옥수수 노점에다 바나나 수레 앞을 지나친 순간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먼지를 보고 운동장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엉성하게 철망 두른 공터가 보였고, 애들이 모여 야구한다고 떠들썩했다. 유니폼 없어 팀을 분간하기조차 힘들지만 경기에 몰입한 애들 모습은 안개 속에 투영된 그림 같았다. 빛바랜 옷에 낡아빠진 글러브를 끼고 담벼락에 야구공을 던졌다 줍는 아이, 경기하는 모습보다 그 곳에 시선이 붙박이 됐다. 십 분 넘게 같은 동작으로 공을 던졌다 줍곤 하던 아이가 뒤돌아보다가 나랑 눈을 마주친 뒤 씩 웃어보였다.

아이는 내 미소와 손짓을 보고서 글러브를 벗으며 다가왔다. 그에게 이름이며 소속을 물었더니 시우닷 데 라 아바나 스포츠 학교 칸탄투스 올랜드 에르난데스라고 했다. 그건 양키스에서 활약하는 꽤 유명한 선수 이름이어서 한 동안 그를 멀뚱하게 쳐다봤다. 에르난데스로 이름 지은 까닭이 뭘까 했더니 톱스타를 롤 모델 삼아 더 열심히 연습하겠다는 각오 때문이라 했다. 쿠바에선 클럽에 소속되면 프로구단과 달리 은퇴할 때까지 이적이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야구에만 매달려야 에르난데스 같은 투수가 되고 체 게바라나 피델 못지않은 인물로 남겨질 거란 사명감이 눈빛에 일렁거렸다. 입고 있는 티셔츠를 가리킨 그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거긴 체 게바라 얼굴이 도트 무늬로 새겨져 있었다. 볼 컨트롤이 나빠 미국 프로 리그에 진출하지 못한 피델의 야구 사랑에다 체 게바라가 심어주고 간 민족애까지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스포츠 학교에서 오래, 철저하게 배운 에르난데스가 죽은 피델을 호명하며 꿈을 꼭 이루고 말겠다고 눈동자 반짝거리는 모습이 밤하늘 별빛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자본주의의 산물인 프로 스포츠는 어딜 가더라도 열광의 도가니다. 일본이며 미국 버금가게 한국에서도 실력 뛰어난 선수는 연봉에다 모델 수입까지 합쳐 수십억 넘는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런 지경이다 보니 돈을 둘러싸고 추한 소문이 여기저기서 떠돈다. 선수 선발 과정이나 경기 승패를 두고서도 돈을 주고받는 일이 허다하지만 막을 방법은 없나보다. 돈이 끓는 곳마다 살벌한 싸움판이 벌어지는 걸 본 피델 카스트로가 프로 리그를 없앴던 건 쿠바를 지속 가능한 평등의 롤 모델로 삼겠다는 큰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직종이나 직급 따지지 않고 월급 편차가 크지 않은 쿠바에 비한다면 자본주의 나라 스포츠 스타들의 연봉은 서민이 자괴감 느끼기에 충분하다. 프로 스포츠가 없어져야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거라는 걸 간파한 피델의 뛰어난 예지력 덕분에 장기 집권의 병폐조차 묻혀버리고 영웅 취급을 받고 있다. 메이데이 세계 노동자 대회 퍼레이드에 나선 숱한 사람이 피켓을 흔들며 죽은 피델을 살려낼 듯 외치는 게 그걸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