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컨테이너 할머니

김기호 청주시상당보건소 방문간호사

2018-07-29     김기호

 온열질환이란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됐을 때 체온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급성질환을 말하는데 일사병, 열사병, 열경련, 열탈진 등이 이에 해당된다. 휴식과 수분 섭취로 증상이 금세 회복되는 경미한 온열질환에서부터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열사병같이 위중한 질환까지 그 증상과 중증도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온열질환을 예방하고 증상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교육하는 것이 여름철 방문간호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요즘은 매일 그 중요한 임무를 띠고 방문 가방과 교육 자료를 들고 대상자의 집으로, 경로당으로, 때로는 길 한복판으로 나선다. 최근 찜통더위로 인해 금세 땀이 줄줄, 숨이 컥컥, 이러다 내가 먼저 큰일 당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방문간호를 받는 대상자들이 폭염에 더욱 취약한 만성질환자이거나 노인들이 대부분이니 내 몸이 힘들고 지친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날은 “외부 활동을 삼가셔야 한다”라고 하면 “자네는 왜 돌아다니느냐”라며 걱정 어린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갈증을 느끼지 않아도 물을 규칙적으로 마셔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방문 중 화장실 가기가 힘들어 목이 말라도 참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아이러니하다’하고 쓴웃음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한 번의 손길을 기다리고 내 말 한마디에 건강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이 단 한 분이라도 계시는 한 이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노라 마음을 재무장한다.

얼마 전 그런 마음다짐을 더욱 굳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었다.

경북 어딘가는 39.9℃로 폭염 기록을 경신했다느니 유치원 통학버스에 홀로 남겨진 아이가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느니 하는 무서운 폭염사고 소식이 쏟아질 무렵이었다. 전국은 이미 폭염과의 전쟁 중이었다. 방문간호사들도 폭염 대비 요령을 전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로 뛰고,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또 주의 문자를 보내는 등 한 명이라도 더 안전선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문득 지난 6월 방문했던 ‘컨테이너 할머니’가 번뜩하고 뇌리를 스쳤다. 할머니는 화재로 집을 잃고 컨테이너 임시주택에서 홀로 지난겨울을 나셨다. 그 겨울 따뜻한 후원의 손길로 마련된 패딩 조끼를 전달해 드렸을 때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시던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 내 등줄기에는 차가운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아차, 우리 컨테이너 할머니!’

컨테이너는 추위에도 취약하지만 요즘 같은 폭염에는 한증막보다 더 뜨거울 게 불 보듯 뻔했다. 전화를 드렸으나 받지 않으셨다. 자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멀리 살고 있고, 동네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사시니 무슨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

서둘러 운전대를 잡고 그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자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연신 문을 두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문 두드리는 손이 따가울 정도로 컨테이너는 이미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거의 울기 직전의 심정으로 문을 열어보려는 순간 집 한쪽 수풀 우거진 곳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며 움직였다.

우리 할머니였다. 우리 ‘컨테이너 할머니’….

“왜 여기 계세요?” 하고 놀란 어조로 묻자 “여름에는 선생님이 이 안에 있지 말고 경로당 가 있으랬잖유~”하고 씩 웃으신다.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할머니는 너무 더워 멀리 떨어진 경로당도 걸어갈 수가 없어 컨테이너 근처 나무 그늘 아래에서 부채질하며 쉬고 계셨던 것이었다.

지난 6월 방문 때 여름에는 컨테이너 온도가 바깥보다 더 올라갈 수 있으니 낮 동안은 경로당에 가 계시라고 했다. 해가 지면 돌아오신 후 현관문과 창문 맞바람을 이용해 환기하시고 선풍기를 창문을 향하게 틀어 뜨거운 공기를 내보내라는 말도 기억하고 계셨다. 실상은 안 그러시겠지만 ‘선생님 말대로 전기세 생각 않고 에어컨도 팍팍 켠다’라는 말씀도 덧붙이시며 나를 안심시켜주려 하셨다.

이러니 어찌 폭염 따위가 이 보람된 일을 막을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주의사항을 당부하고 일어나려고 하자 “자식 보다 더 살뜰히 챙겨줘 고맙다”라며 자식들 오면 주려고 아껴두신 수박 한 쪽을 건네주셨다. 참으로 달콤하고 시원한 생명수 같았다.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어 오늘도 우리 방문간호사들은 폭염 속으로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