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들의 마음을 훔칠 청주의 매력
안경애 청주교육지원청 행복교육팀장(장학사)
[동양일보]“엄마, 청주는 몇 년 된 도시야?” 재작년 11월경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이 세종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며 며칠을 졸랐다. 착잡한 심정으로 세종시 이곳 저 곳을 돌아보던 중 아들이 불쑥 던진 질문이다.
사료에 따르더라도 8세기말 통일신라시대 서원소경에서 서원경으로 승격됐다하니 당시 청주는 중부지방을 대표하는 규모가 꽤 큰 도시였을 것이다. 일본에서 발견된 신라촌락문서가 바로 서원경 부근 촌락에 대한 조사 문서이니 청주는 못해도 13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청주가 적어도 1300년이 넘은 도시라고 하니 “그럼 세종은 몇 년 된 도시야”라고 물었다. “세종은 10년도 안됐어”라고 답하고 보니 청주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역사성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우리 아이들은 청주라는 도시가 갖는 역사와 그 매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발 디디고 사는 이 공간에 대해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이들에게 오래되었다는 것은 자부심은커녕 낡은 진부함으로 치부되고 말까? 많은 자문들이 꼬리를 물며 나는 아이를 설득하고 있었다.
명색이 ‘행복교육지구’ 업무를 하고 있어서 솔직히 안 되겠다고 이해를 구했다.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지역의 교육력을 높이고 정주여건을 강화하는 사업 담당자로 사실 마음은 복잡했다.
2017년 기반구축에 이어 현재까지 청주행복교육지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청주에는 청소년들이 갈 만한 장소가 부족한 게 아니라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청소년활동진흥법에 ‘읍‧면‧동’마다 ‘청소년문화의집’을 둬야 한다는 법조문은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은 사실상 ‘주민’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학생이며 ‘학생’이 있을 곳이란 ‘학교’ 아니면 ‘학원’, 그 이외 곳은 아예 고려 대상에도 없다.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은 곳곳에 만들어지면서도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난 후 돈 없이도 갈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없다.
아이들의 공간 인프라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가끔 반문이 들어온다. “학교 유휴공간을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학교에 사실상 유휴공간이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다시 되 묻곤 한다.
아이들에게 쉴 권리를 뺏은 것은 입시 역사만큼 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사실 심각하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학급교실, 방과후교실, 돌봄교실, 학원으로 이어지는 공부와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시달리고 있어 어쩌면 학대와 가깝다.
더욱 큰 문제는 달리 대안도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돌봄과 입시라는 현실 앞에 다른 대안을 당장 마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학교와 학원을, 학원과 집을 오고가는 길 어느 중간에 아이들이 숨 쉬고 수다 떨고 편안히 있을 참새방앗간 공간쯤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긴 역사만큼 청주도 부침이 있었고 헐고 짓기는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계획된 신도시가 갖는 반듯반듯함에 비해 우리의 오래된 도시는 어수선하고 뭔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로 산만하다.
세종시가 숨을 곳을 주지 않는 어디나 빛이 비추는 대낮같은 곳이라면 청주는 숨을 곳이 있고 그늘과 양지가 골목에 긴 그림을 드리우고 있는 곳이다. 학교 가는 길목이나 골목 어귀 쯤, 모퉁이길 돌아가는 곳, 삐뚤빼뚤 한 곳..... 다양한 곳 다양한 공간에 우리 아이들이 숨 쉴 숨구멍 같은 곳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영운동에 있는 문화재생공동체 ‘터무니’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차라리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게 오히려 돈이 덜 들었을 것 같은 오래된 건물과 터,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살았던 사람들의 스토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재탄생한 공간이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아주 오래된 것과 대충 오래된 것, 새것이 마구잡이로 섞인 우리 도시가 오래되면 오래된 대로, 새것이면 새것인 대로 아이들에게 내어 줄 수 있는 품들이 있을 것이다.
2019년 청주행복교육지구에서는 처음으로 ‘마을교육연구회’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한 꼭지를 공간발굴과 그 활용으로 정했다. 주민들이 어떤 숨은 공간을 찾아낼지 또 어떤 공간들이 발굴될지 지금부터 기대된다.
아이들이 청주가 갖는 매력을 가까운 공간에서 찾을 수 있도록 그 공간에 새로운 스토리들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그래서 청주가 아이들에게 배움(學)과 익힘(習) 속에 쉴 권리를 온전히 주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