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진, 우리는 안전한가?

김종석 기상청장

2020-06-16     동양일보
김종석 기상청장

[동양일보]“너무 높게 나는 것보다 너무 낮게 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안전하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이카루스 이야기>를 쓴 작가 세스 고딘의 말이다. 안전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낮은 비행이 위험한 것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안전하다고 무방비하게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예고 없는 땅의 움직임 ‘지진’이 우리를 언제 어떻게 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발아래 땅의 움직임이 무엇보다 무서운 이유다.

우리는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현대과학 기술은 인공위성, 레이더와 같은 원격탐사 장비와 슈퍼컴퓨터를 활용한 첨단기술을 통해 우리에게 자연재해를 어느 정도 미리 알고 대비할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있다. 지구 내부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생겨 그 충격으로 땅이 흔들리는 현상인 지진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현재로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이다.

역사적으로 지진을 예측하려는 시도는 몇 차례 있었다. 1975년 2월 4일에 발생한 규모 7.3의 중국 하이청 지진은 지진을 예측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1976년 중국의 탕산 지진은 예측에 실패했고, 그해 광둥성에서도 지진 예측을 시도하여 지역 주민에게 두 달 동안 천막생활을 하게 하였으나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 동물들의 이상행동, 지하수의 수위 변화나 지하의 라돈가스 농도변화 등이 지진 발생의 전조현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혹여나 전조현상이 감지되더라도, 어느 지역에서, 언제 지진이 발생할지 특정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진으로부터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진의 발생은 예측할 수 없지만, 진앙에서 비교적 먼 지역은 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 짧으면서도 귀중한 시간이 주어진다. 바로 지진조기경보 시스템 덕분이다. 지진조기경보란, 큰 지진피해를 일으키는 지진파(S파)가 도달하기 전에 지진 발생 상황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지진파 중 P파가 S파에 비해 약 1.73배 빠르게 전파되는 성질을 이용하여, P파 탐지 후 신속하게 지진 발생 상황을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원리다. 전국에는 314개소의 지진관측소가 24시간 지진을 탐지하고 있으며, 특정 지역에서 지진이 관측되면 빠르게 규모와 예상전파시간을 추정하여 피해 예상지역에 휴대전화 재난문자 발송을 통해 전파한다. 평소 이러한 서비스를 숙지하여 지진조기경보 문자를 받을 시, 당황하지 말고 대응요령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지진 발생 시, 적절한 초기대응은 이후 이어질 구조 활동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 지진 발생 전에는 탁자 아래와 같은 집 안의 안전공간을 미리 파악해두고, 떨어지기 쉬운 물건들을 고정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주변의 대피할 장소를 미리 파악해두고 물, 비상식량, 손전등, 응급약품과 같은 비상용품을 준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크고 작은 파동이 시간차를 두고 도달하는 지진파의 특성상 처음 진동을 감지하고 그 진동이 끝날 때까지는 안전한 장소에 머무르다가, 진동이 멈춘 후 지정된 지진 옥외대피소로 대피해야 한다.

대규모 지진은 주로 일본이나 대만과 같이 판 경계 부근에서 많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판 내부에 위치하여 상대적으로 지진 발생 횟수가 적고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2016년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은 계기 관측 역사상 최대인 규모 5.8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한반도에 광역적인 응력이 축적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다.

한반도 어디서든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지진의 안전지대는 없으며, 사전에 준비하는 것만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낮게 날고 있어 안전하게 날고 있다는 착각, 우리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지진 대응요령을 숙지하고 있다면, 지진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