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청렴(feat. 이순신 장군)
황현식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동양일보]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위인들이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사준 위인전집을 읽고 또 읽었는데 유독 많이 닳아 너덜너덜했던 책이 있다. 바로 이순신 장군 책이었다.
어릴 때는 단지 수많은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는 그런 장군의 업적에 대해 흥미가 가 좋아했던 것 같다. 나이가 먹고 수많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설, 역사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더 많이 접했고, 공직생활을 하는 이순신을 떠올리면 청렴과 리더십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이순신은 몰락해가는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번의 시험의 낙방하고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무과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과 첫 해전을 벌여 30여 척을 격파한 옥포대첩. 거북선을 처음 사용해 적선을 격파한 사천포해전. 또 고성의 당항포 앞바다에서 왜선을 격파한 당항포해전, 학익진 전법을 사용해 승을 거둔 한산도대첩,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의 명언이 유명한 명량대첩, 그리고 마지막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로 유명한 이순진 장군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이런 업적들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의 성품에 대한 일화도 많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은 선조의 왜군 공격의 명령을 거부했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의 함정으로 승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부하들의 안위와 민생을 위해 왕의 명령을 거절한 것이다. 자신이 처할 상황을 알면서도 부하들을 사지로 몰지 않았다. 이것으로 이순신 장군은 파직돼 백의종군(계급이 없는 말단)이 된다.
하지만 이순신의 청렴함을 아는 중앙관리들이 이순신을 천거해 백의종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공이 부정한 청탁을 거절해 파직되기도 했고 군사 노비를 가리지 않고 공을 세운 일에 대해 차별을 두지 않았고, 혼인을 해 권문세가의 힘을 등에 업고 출세한다는 건 원칙에 어긋난다고 거절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자신의 강직한 성품, 부모에 대한 효심,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반복적으로 나와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로 인해 불안과 불만‧분노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사태를 해결하고 줄이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의료진들과 기타 많은 이들이 희생하고 환자들을 돕기 위해 헌신하고 있고, 각 개인들도 최대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가지 않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개인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자가격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가격리 조치를 위반하고 외출하고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청렴의식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청렴은 시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공직자는 물론이요 개인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에 최소한의 청렴의식을 갖추고 생활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현명하게 극복해 낼 것이고, 이번 일로 한 단계 더 성숙된 청렴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