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포럼/ 3세대가 서로 존엄하는 사회 만들기Ⅰ

빛 그림 형상전 & 법화불화전 감상문(2)

2020-11-08     동양일보
김선우 작가의 '초전법륜의 붓다'
빛 그림 형상전 & 법화불화전 전경.

[동양일보]젊은 김선우 화가의 작품에 대해….



야마모토 교시(일본 미래공창신문사 사장): 지난날 보은에서 개최한 한‧일 노년철문학 대화모임에 참석했던 인연으로, 김연숙 교수의 따님 김선우 화가에게 ‘국화꽃’ 그림을 선사받았다. 이 그림은 사무실 안에 걸려있고, 그 그림을 매일 본다. 노란 국화꽃의 ‘빛’과 배경의 ‘흑암’의 아우름을 통해서, 생사관을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빛이 어둠을 거두고 세상은 다시 밝음을 되찾게 된다는 이치를, 몸으로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김선우 화가의 그림에서 받은 것과 같은 삶의 지혜와 각성을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녀의 다른 그림들에서 영감과 용기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인연의 귀중함, 만남의 소중함, 젊은 화가를 아끼는 마음이 3세대 상호존엄사회 만들기의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전화통화로 간접참여)



원혜영(불교 전공, 미술비평): 김선우 작가는 어리지만, 색채에서 중후한 멋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밝고 예쁜 그림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오래 보면서 질리지 않고 밝고 예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김선우 작가의 그림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두울 수 있지만, 볼수록 묵직한 느낌과 심오한 멋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림들이 대다수다.

‘초전법륜의 붓다’는 붓다의 머리 쪽 후광에 전법을 상징하는 수레바퀴가 자리하고 있어서 초전법륜(初轉法輪)의 첫 설법을 떠오르게 한다. 따라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하고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처음 가르침을 전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그 가르침의 주요한 요지는 사성제, 팔정도 등등이었다. 초전법륜 불상은 그래서 유명하다. 김선우 작품에서는 인간들과 신들이 함께 붓다의 처음 설법에 귀 기울여 듣고 있다. 그리고 기뻐하고 있다. 붓다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 붓다에게 집중하고 있으며 경청한다. 김선우 작가는 붓다가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을 자연스럽게 담았다.

‘마하 마야2’는 마하마야 시리즈물의 일환이다. 어머니 마하 마야는 아기 붓다를 상징하는 배경 뒤쪽에 있다. 주변에는 전단향 또는 침향 잎처럼 보이는 잎사귀가 마하 마야의 어깨 아래로 조용하게 장식되어 있다. 처음 마하 마야가 붓다를 잉태하고 해산한 상황을 상징하는 김선우 작가의 ‘마하 마야 2’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에피소드를 넣었다.

“보살은 10달을 어머니 몸에서 있다가 태어나자마자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켰다.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사방을 둘러보며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에피소드가 ‘마하 마야2’에 넣어지면서 이 그림은 마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를 떠올리게도 한다.

이 밖에도 우리 모두 고통 받고 있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내민 손’, 화폭 전체를 나이 많은 여성의 절규하는 모습으로 배치한 ‘위안부 여성’, 고통을 형상화환 ‘7개의 고통’ 등 눈여겨볼만 하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가진 장점은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고도 어느 정도 범위 안에서 상상할 수 있고 공감할 공통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김선우 작가의 그림은 이야기가 있고 가볍지 않게 자신의 고민과 감성을 담았다.



김영미(시인, 대전대 강사):‘노소동행’ 전시회를 본 뒤, 따뜻한 만남을 가졌다. 새삼 ‘만남’의 소중한 가치를 느낀 시간이었다. 이번 전시회는 진정한 노소동행의 어울림으로 또 하나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80대 김공수 교수님과 20대 김선우 작가의 신선한 만남이 서로서로 비추는 빛이 된 듯하다.

김선우 작가의 그림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인간적 고독감이다. 고독을 그럴싸하게 꾸미지 않고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생각이 생각을 물고 간다.

남다른 감각이 이성 속에 머물다 감성으로 흐르며 영성으로까지 가는 그 생각의 꼬리가 어디에 닿을지, 작가의 붓 터치는 직선 너머의 곡선을 지향하듯 관념적 사유가 부드럽다. 네모난 화폭에 둥근 붓으로 일어난 삶이 때론 지극하고 때론 고독하여 어떤 그릇에도 담기 어렵다.

더욱이 제목 없는 그림은 더 사유하게 한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그만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무제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매듭짓게 한다. 이번 전시회 그림에는 상징성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한 주제로 모이게도 하지 않는다. 생명일까? 자유일까? 사랑일까?

김선우 작가의 그림은 의미와 감성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20대 젊은 작가, 김선우는 지금, 여기 오늘을 그 누구보다 철학적으로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성실히 최선을 다해 그림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것이 예술을 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확인되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김선우 작가의 길에 등불이 켜지길 바란다.



장준호 박사(전 청주대학교 부총장):김선우 화가가 깨달은 불교의 진리를 어떻게든 타자에게 전해서 타자와의 공감을 이루려는 염원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리고 사생화나 풍경화가 아닌 불도-불교의 도=진리를 그림에 담고 그것을 가식화시키려는 뜻이 감지된다.(전화통화로 간접참여)



유성종(동양포럼 운영위원장): 김선우 화가의 전시회에 가보았다.

보는 사람마다 각기의 소감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에 대하여는 축하와 칭송을 곁들여서 다양한 소감을 말하는 것이 예(禮)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미술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소양으로 감상(鑑賞)하고 감상(感想)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것을 작가나 부모에게 평언하고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나는 미술을 모르는 주제이기에 그와 같은 말조차 할 수가 없다. 굳이 소감을 묻는다면, 교육에 종사한 자의 입장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말 한마디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 한마디를 하겠다. 그것은 화가에게 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김선우 화가의 ‘지금, 그대로’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김선우 화가는 아직 20대의 젊은 기예(氣銳)이다. 따라서 그는 일천한 기예(技藝)인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원숙한 대가에 맞추어서 평하는 것을 참으로 조심스러운 것이다.

20대인 김선우 화가는 20대의 사상과 기예의 ‘지금, 여기’ 그대로, 그리고 앞으로 올 30대‧ 40대는 그때의 그대로, 50대‧ 60대는 또 그때의 그대로, 이렇게 하여 사상과 철학, 기예와 표현이 원숙하여 가는 것이지, 그것을 지금 대가를 기준으로 하여 평하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자손과 후진의 성취에서 맹자가 경계하는 조장(助長)의 우(愚)를 범하고 있다. 교육에서조차 ‘빨리빨리, 어서어서’를 외치고 있는데, 그것은 욕속부달(欲速不達)의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렇게 하여 되는 것도 없거니와, 더러 성취한다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그 장래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것이다.

나는 김공수 교수의 사진판화전과 함께한 김선우 화가의 전시회의 소감을 ‘兩伯畵功 眞妙明哲, 初河 識’라고 써서 김 화가의 자당 김연숙 교수에게 드리면서 축하하였다. ‘양백화공, 진묘명철, 초하 지’는 ‘두 분 화백의 예술에 공들여 이루는 보람, 참으로 오묘하여 사리를 환하게 밝히리.’라는 뜻으로, 나의 호, ‘초하’로 올린 축언인데, 김선우 화가의 장래의 대성을 기원하는 뜻이었다.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유성종 선생님의 ‘여기, 지금 그대로를 존중’한다는 말씀 속에, 인간존엄성 개념 개신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3세대 상호존엄 사회는 우리가 함께‧ 더불어‧ 서로의 ‘여기, 지급 그대로’를 존중하는 언행‧ 태도‧ 습관을 형성하는 데서 시작된다.

충북이, 청주가, 가까운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키우려는 사회심리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지역발전이 늦어지는 이유다. 유명하고 영달한 사람은 물론 그들의 업적과 명성에 따라 존경해야겠지만, 어떤 사람이든―남자이든 여자이든, 나이든 이든 젊은이든―‘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가치와 권리를 인정하여 소중히 여기고, 어떠한 형태의 존재가치‧ 생명가치‧ 인격가치를 훼손‧ 부정‧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언행을 조심하고 태도에 배려하고, 남을 깎아내려야 속이 시원한 마음의 습관을 고쳐나가도록 하는 것이 3세대상호존엄사회의 기본이다.

우리는 젊은 김선우 화가를 노숙련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함께 격려하고 바람직한 성장과 성취를 함께 성원하고 격려하는 것은, 여기서 3세대 상호존엄사회의 씨앗이 심어지고, 싹이 트고, 줄기가 뻗고, 잎사귀가 생기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라는 기대와 소망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경로(敬老)가 아닌 상호존엄’이 미래공창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