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의 아내’ 아닌 화가 박래현을 만나다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탄생 100주년 기념 ‘박래현, 삼중통역자’전
5월 9일까지 회화·판화·태피스트리 넘나들은 작품 104점 등 전시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20세기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박래현 화백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청주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26일부터 5월 9일까지 ‘박래현, 삼중통역자’전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해 박래현(1920~1976년) 탄생 100주년에 맞춰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덕수궁관에서 지난 3일까지 열었던 회고 순회전이다.
청주는 박래현 화백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의 남편으로 평생 삶과 예술의 여정을 함께 했던 운보 김기창 화백은 박래현과 사별 후 어머니의 고향인 청주에 ‘운보의 집’을 짓고 아내와의 추억을 기리며 여생을 보냈다.
순회전이지만 청주에서만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도 있다. 바로 운보가 그린 아내의 이색적인 초상화 ‘화가 난 우향’(1960년대)이다.
이 작품은 청각장애를 지닌 유명 화가의 아내이자, 4남매의 어머니, 또 예술가로서 어느 것도 털어내기 어려웠던 우향의 삼중의 삶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집안일을 마친 밤 시간에야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우향을 운보는 ‘부엉이’라 불렀는데, 늘 깨어있었고 고단했고 무척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에 대한 예리하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박래현, 삼중통역자’ 순회전은 덕수궁과 동일하게 1부 한국화의 ‘현대’, 2부 여성과 ‘생활’, 3부 세계 여행과 ‘추상’, 4부 판화와 ‘기술’로 구성된다.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 등 작품 104점과 자료 18점을 만날 수 있다.
이효진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박래현의 일생과 예술을 담은 영상을 먼저 접하고 이후 전시실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그의 작품 활동 및 생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며 “전시장 곳곳에 비치된 기고문(수필) 한글 복제본과 문구를 병치시켜 마치 태피스트리의 들실과 날실처럼 엮이고 짜내려가며 박래현의 삶과 예술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우향은 1920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부유한 대지주의 장녀로 태어났다.
여섯 살 되던 해 가족이 군산으로 이주해 군산공립보통학교를 다녔다. 전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사범학교에 진학한 뒤 미술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39년 도쿄로 건너가 이듬해 여자미술전문학교 사범과 일본화에 입학했다.
4학년 재학 중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했고, 시상식을 위해 귀국했다 김기창을 만나 1947년 결혼했다. 이후 박래현은 1948년부터 1971년까지 김기창과 12회의 부 부전을 개최했고 김기창을 비롯한 중진 동양화가들과 백양회를 결성, 동양화단을 이끌었다.
1956년 ‘이른 아침’으로 대한미협전 대통령상, ‘노점’으로 국전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대 이후에는 해외를 여행하며 시야를 넓히고 추상화로 작품을 전향했다.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미국에 남아 판화를 배웠고, 1974년 귀국해 판화전을 개최하며 판화가로 변신했다. 같은 해 훌륭한 예술가이자 모범적인 여성에게 주는 신사임당상을 받았다.
이후 다시 동양화 작업을 재개하고 미국의 판화전에 참석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으나 갑작스럽게 간암이 발병, 1976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전시 기간 중 2층 쉼터 ‘틈’에서는 관람객을 위한 연계 프로그램인 ‘태피스트리 제작 워크숍’이 진행된다. 청주에서 활동하는 이선희 작가와 ‘작가와 함께하는 워크숍’도 기획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박래현과 김기창의 삶과 예술이 잠든 청주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래현 예술을 재조명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