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응복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태안기름사고피해민들과 지역의 동반상생의 길을 열겠습니다"
[동양일보 장인철 기자]태안유류유출사고 책임자 삼성중공업의 출연금 2024억원을 집행하기 위해 설립된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에 국응복(67) 현 이사장이 다시 선출됐다. 허베이는 기름유출사고를 일으킨 홍콩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에서 따 왔다.
2007년 12월7일 태안군 만리포 앞바다에서 원유 1만2547㎘가 유출되는 사상 최악의 기름사고 이후 14년간 피해보상과 재난극복투쟁을 이끌어 온 국 이사장은 재선을 기뻐할 겨를이 없다.
사고 당시 만리포해수욕장 번영회장이던 그는 검은 재앙의 격랑에 휘말려 태안군피해민연합회장, 서해안유류피해총연합회장으로 피해보상투쟁을 이끄는 선봉장이 됐다.
6년에 걸친 삼성 서울본사 상경투쟁으로 2008년 1000억원을 제안한 삼성출연금을 3600억원으로 높여 서해안 11개 시·군피해주민들과 합의를 이끌어냈다.
삼성의 성의있는 대화와 책임보상을 요구하며 삼성중공업 서초사옥 앞에서 그가 할복시위(2012년10월25일)로 피해민의 의사를 전달한 지 1년여만의 합의다.
그의 몸에는 지금도 깊고 거친 그 날의 상처가 남아있다.
앞서 태안군 피해주민 4명은 생계의 터전인 바다가 기름바다로 돌변한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얻어 낸 삼성출연금이지만 피해민들에게는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의 시작이었다.
서해안 11개 시·군간 출연금 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배분이 마무리 돼 사고발생 11년 만인 2018년에서야 시·군에 돌아갔다.
2024억원을 배정 받은 태안(1503억), 서산(337억), 서천(123억), 당진(61억) 4개 시·군은 이 기금집행을 위해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10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허베이조합은 기금집행을 뒤로 한 채 대의원회를 구성하는데만 2년을 보냈다.
지역별로 더 많은 대의원 수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다른 주장으로 맞서 지난해 연말에서야 태안지부 대의원 선출을 마무리했다.
이사장 선출까지 모두 마치고 이달부터 정상 운영이 가능해진 허베이조합은 삼성출연금 집행의 파고를 또 넘어야 한다.
‘젯밥다툼’ 오해를 부른 내부갈등으로 허베이조합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고, 단 한 표차로 이사장선거 당락이 갈릴 만큼 내부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살게해 달라고 몸부리치던 같은 처지의 피해민들이 삼성출연금 집행을 두고 갈등을 빚는 모습이 좋게 보일 턱이 없습니다. 하지만 서해안 7개 시·군처럼 재단법인을 선택하지 않고 사회적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은 의사결정구조가 복잡하더라도 피해주민들의 의견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 이사장은 지금 당장 기름파도를 또 넘는 것처럼 힘들다고 피해민과 지역이 동반상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기금집행을 외면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는 "허베이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조합운영 미숙과 조합원간 갈등이 제공한 부분도 있지만, 현행법과 기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부분도 크다며 오해는 해소하고 지혜는 모아 나가는 과정을 거친 집단지성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선 삼성출연금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회를 개최하고 공정한 집행을 위해 공청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보다 미래지향적인 기금사용을 위해 전문기관 용역을 발주, 다양한 사업발굴과 검증된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4개 시·군 4만 2000여명의 피해민들이 쉽게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가입조건 완화작업도 진행중이다.
국 이사장은 "어쩌다 14년동안 굴곡진 인생을 살다 보니 담배는 다시 물고 웃음은 잃었다" 며 "우리 조합원들이 기름사고를 극복한 주역다운 모습으로 서해바다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도록 임기동안 조합발전의 초석만은 다지겠다"고 다짐한다.
태안 만리포가 고향인 그는 부인 정순(65) 씨와 1남1녀가 있으며, 태안기름사고 극복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글 ·사진 태안 장인철 기자taean2@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