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커피 이야기(17)/ 블랙커피의 추억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카페 컨설턴트

2021-05-27     동양일보

[동양일보]가수 권상근이 부른 ‘블랙커피’라는 노래가 있다.

대중음악계에서 명곡 반열로 대접받는 곡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이 노래만 들으면 군대 가기 직전인 1991~1992년이 떠오른다.

‘왠지 블랙커피가 이별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던 날 블랙커피를 주문해서 함께 마신다. 그런 기억이 있는 주인공은 블랙커피를 마실 때마다 그녀가 웃으며 다시 올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라는 내용의 가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블랙커피였을까?

요즘은 블랙커피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원두커피를 주로 판매하는 커피숍보다, 동결건조된 인스턴트 병 커피에 프림과 설탕을 넣은 커피를 제공하는 다방이 더 많았을 때였다. 북문로에 있던 명동 칼국수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2층에 있던 보석 다실에서 커피를 마시던 추억도 생각이 난다.

다방에 가서 커피를 주문하면 “어떻게 드릴까요?” 하고 되묻는다. 그러면 기호에 따라 ‘둘, 둘, 둘’ 이나 ‘둘, 둘, 셋’이라고 말하곤 했다. 무슨 암호처럼 들리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둘, 둘, 둘‘은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이렇게 넣어서 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둘, 둘, 셋’은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이렇게 넣어서 달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가끔은 “나는 블랙으로~” 이렇게 주문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프림이나 설탕을 넣지 않고 커피만 넣어서 달라는 의미다.

당시에는 블랙커피를 주문하는 사람은 커피의 진정한 맛을 아는 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왠지 멋있어 보이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복 판매 시장에서도 볼 수가 있었는데, 등산복 시장 초기에는 알록달록한 원색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랙계열의 등산복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군 제대 후 등산에 취미를 붙이던 때 어느 산악 대장에게 들은 바로는 원래 블랙색상은 전 문산 악인들이 즐겨 입던 색상이었는데 산악회를 중심으로 일반 애호가들 중에도 전문가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하나, 둘 검은색 등산복으로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급 정장이나 높으신 분들이 타는 승용차의 색도 검은색이 많은 것을 보면 ‘Black’이 고급스러운 색상인 건 확실해 보인다.

주말이면 메뉴에 대한 레시피 업그레이드를 위해 음료를 많이 마셔보고 평가해야 하는데, 2주 전부터 다이어트 중이라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은 칼로리가 10Kcal 전후로 굉장히 낮은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 음식을 제한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먹다 보니 커피 향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블랙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커피 본연의 맛을 즐기는 일이면서 왠지 폼도 나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유익한 일이었다.

이제는 다방문화가 거의 사라지고, ‘블랙커피’라는 단어도 자주 사용하지 않는 시대, 굳이 커피숍에서 블랙커피를 주문한다면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정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블랙으로~” 이렇게 말했다가는 왠지 옛날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