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커피이야기(24)/ 서스펜디드 커피가 있나요?

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카페 컨설턴트

2021-07-15     동양일보

[동양일보]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라는 말이 있다.

커피숍에 들어가서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은 커피값을 지불하면서, 자신이 주문하는 커피값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이렇게 더 많이 지불된 금액은 돈이 없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나, 타지역에서 여행 온 이방인들을 위한 것으로, 그들은 커피숍에 들어가서 이렇게 말하면 된다. “서스펜디드 커피가 있나요?”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은 약 10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맡겨둔 커피(Caffe Sospeso)’라는 이름의 전통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0년 12월 10일 세계 인권의 날에 즈음해서 ‘서스펜디드 커피 네트워크’란 조직이 이탈리아에서 결성되면서 다시 활성화되었다.

현재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전 세계에서 500개 이상의 커피 전문점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2017년에는 미국,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합작으로 ‘맡겨둔 커피(Caffe Sospeso)’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점점 더 많은 도시의 커피숍에서 이 운동이 확산되고 있으며, 어떤 커피숍에서는 ‘서스펜디드 커피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기도 한다고 한다.

이 운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아주 사소한 친절과 배려가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 경험하게 해 주는데, 언제나 악용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는 마을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있으면 마을 공터 땅에 커다란 원을 그려 놓고 한나절 동안 나가지 못하도록 벌을 주었다고 한다. 좀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생기면 한나절보다 긴 시간인 하루 동안 그 원에서 나가지 못하는 벌을 주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선을 넘어서 나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정해진 시간 동안 원 안에서 꼬박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벌을 받고 있던 한 마을 사람이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원 밖으로 나가면 진짜로 큰일이 생기는 걸까?”

그러고는 조심스레 한 쪽 발을 원 바깥쪽으로 내딛는다. 원 안에 함께 있던 다른 사람이

큰일 날 거라며 말리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부터 형벌을 받는 장소에는 원이 그려져 있던 곳에 담장이 세워지고, 지붕이 만들어지고

순번을 정해 지키는 사람까지 있게 됐다는 것이다.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에서도 분명히 원 밖으로 발을 내딛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면서 돈이 없지만 커피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선물할 것이다.

최근 모 회사의 창업자는 자신의 전 재산 가운데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그 금액이 무려 5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그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무엇이 성공인가/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커피 한 잔’으로도 얼마든지 세상을 좀 더 살 만하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