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민과 불안으로 광야를 헤매는 광인/화가 김윤섭 편

박종석 미술평론가

2021-08-19     동양일보
광야를 헤매는 광인(A madman wandering through the wilderness), 310x215cm, oil on canvas. 2020.

[동양일보] 고민과 불안은 오히려 눈과 마음을 뜨겁게 한다. 김윤섭 작가는 대학 졸업 이듬해인 2009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2차례의 개인전을 했다. 작업만이 그의 삶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작가의 개인전 표제를 살펴보면, 『마계, 근방역(2009)』, 『들은 얘기(2009)』, 『무의미를 목표로 한 접속(2010)』, 『지옥(2014)』, 『순례자-순교자, 이 세상은 너무 오래돼서 새로운 게 없어요(2016)』, 『모자의 형식(2019)』, 『올드스쿨 스페이스(2019)』, 『마계인(魔界人, 2020)』 등 그 작업의 일관된 주제를 찾기 무척 어렵다. 10여 년간 발표한 많은 개별작품의 제목을 살펴보아도 작가의 창작 세계에 근저를 이루는 개념을 찾아내기가 그리 녹록지 않다. 작가는 말한다. ‘매 작업 시리즈마다 다르다’

필자의 눈에 언뜻 첫 개인전과 지난해 전시 제목 속에 있는 ‘마계(魔界)’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작가는 ‘내 작업을 관통하는 정서가 있다면, 집중보다는 산만함, 이상보다는 현실, 정적인 것보다는 움직임, 우울함 또는 열정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성질의 것을 마계라고 이름한다. 마계는 삼매경(三昧境)의 반대되는 의미’로 작가는 ‘늘 마계의 행보를 걸어왔다.’고 말한다. 작가가 말하는 ‘마계’는 어떤 세계일까? 이는 필시 작가가 현실을 읽는 관점인 동시에 그의 창작 세계, 그림(이미지)의 세계일 듯하다.

대개의 예술가는 보통 하나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오랜 기간 깊이 천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윤섭 작가는 이러한 작가적 태도를 ‘삼매경’에 빠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한다. 작가는 남다른 길로, 남다른 세계로 가고 싶어 하는 뜻을 ‘마계’라는 말로 표현하면서, ‘아귀의 세계 같은 이 인간세계에 같은 아귀로서 무언가 내놓고 싶었다.’고 자신의 열망을 털어놓았다.

작가적 기질이 터진 그의 대학 시절 첫 물음은 ‘왜 순수예술은 지고한 것으로, 애니메이션은 하위문화로 취급하는가’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로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의 제목에서도 보이는, 삶의 ‘근방역(近方域, circumference)’, 즉 주변부,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위’에 관심을 두기 시작 했다.

작가가 ‘마계’라고 이름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간 행위에 몰두하고 있다고 해서 작가 일상의 삶(현실세계)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가 주류 아니라고 등한시하는 그곳에도 역동적인 삶이 있다고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전 관습의 눈이 가르치는 가치 있는 삶, 옳은 길, 품격있는 문화에서 벗어난 세계가 분명히 있고, 그것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할지라도, 김윤섭 작가는 당당히 그 세계를 마계라 이름하고 그 곳에서 일어나는 실존을 꺼내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지금 작가는 오는 9월 오뉴월갤러리(서울)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현실의 지금 여기 실존 조건을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異世界)로 태어나 자신의 기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일부 젊은이들의 열망을 다룰 것이라 한다. 코로나 19를 조심하여 그가 새로 찾아 그려낸 주변부 이야기를 꼭 볼 작정이다.  
글/박종석 미술평론가

김윤섭 작가

▷김윤섭 작가는...

김윤섭 작가는 공주대학교 애니메이션과(2008) 졸업. 개인전 12회, 그룹전 20여회.

국내 창작스튜디오 5곳, 서울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