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그때는 그랬다네
김경숙 수필가
[동양일보]바람이 솔솔 분다. 이런저런 일로 분주했던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은 생각으로 읽고 싶은 책을 살피다가 정창권 작가의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이란 제목에 눈길이 간다. 언제나 그렇듯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은 첫 미팅을 나가던 설렘으로 가슴이 콩닥거린다.
처음 책을 손에 잡으면 만난 날짜와 그날의 날씨나 기분 등을 적어 넣는 습관이 생겼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이란 책을 손에 쥐고 무어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궁금하다고 써넣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조선시대 생활상이 눈에 그려진다. 조선 시대엔 남자가 살림을 잘못하면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남자가 살림에 소홀하면 부부 싸움의 큰 원인이 되었다는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듯하다. 작가는 조선 시대에 남자 살림꾼이 꽤 많이 존재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 퇴계 이황을 예로 들었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내 얕은 지식으로는 퇴계 이황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로 학문에 뛰어난 근엄한 모습이 연상되지만 이 책을 통하여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살펴보면, 퇴계는 21세 때 김해 허 씨와 결혼했는데 부인이 두 아들을 낳고 산후병으로 사망했다. 그 후 30세에 안동 권 씨와 재혼을 했는데 부인이 지적장애인이었다. 그 부인을 대신해서 퇴계는 안팎의 집안 살림을 모두 주관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해나갔다. 관직에 있는 동안은 아들에게 편지를 통하여 살림을 관리하도록 하고 공부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음식과 의복 같은 안살림과 농사와 반찬거리 마련, 노비 관리, 재산증식, 세금 납부 같은 바깥 살림을 거의 도맡아 했다. 그러고 보면 조선시대 양반사회를 지금 현 사회로 보면 직원을 적어도 수십 명 거느린 회사를 경영하는 조직과 같은 구조라고 봐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관직에 오른 가장이 집안 식구와 일가친척, 그에 따른 노비들까지 먹여 살려야만 하는 구조였으니 학문은 물론이고 집안 살림과 재산증식 등 경영에도 게을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즈음 가족 간에 끔찍한 사건이 사회 이슈로 떠오를 때면 삭막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산업 발달과 핵가족화 등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엔 인간의 존엄성이 너무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에 머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뜻 한 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으레 듣는 말이 ‘집에서 어떻게 하는데 애들이 그것밖에 안돼’라는 질타가 따라왔었다. 이런 말은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조선시대 자식 교육은 아버지가 담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식의 과거시험, 관직생활, 혼인, 손자와 증손자 교육 등등 일생 동안을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피고 살림을 경영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선비의 하루 일과를 정리한 사부일과를 살펴보면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하루의 일과를 시간대별로 구분하여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 시대 양반 남자는 집안일을 수행하며 매일 바쁘게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살아온 부부상이라기보다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부부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조금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육아일기인 양아록(養兒錄)이 사대부 집안의 아녀자가 남긴 자료가 아니고 손자의 성장 기록을 남긴 묵재 이문건인 것도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남자가 집안 살림에도 많은 관여를 한 반증은 아닐까. 조상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선조들이 남긴 기록문화의 혜택임을 조선 전기 대표적인 생활일기인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얼마 전 문화도시 청주에서 열린 기록문화축제가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청주시민 누구나 기록문화의 주인공이 되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청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으로 전해져 대대손손 삶의 향기를 음미했으면 하는 꿈을 그려본다. 가을의 신선한 바람처럼 내게 다가온 책 한 권. 가을 곡식을 거두는 농부의 심정으로 마음속에 저장 단추를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