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자리 찾기 힘든 지금 청춘이 갈 곳은, 은둔/화가 나수민 편

글 박종석 미술평론가

2021-09-09     동양일보
젊음, 캔버스 위에 유채, 45.5㎝ × 53㎝, 2019

[동양일보] 내내 가슴에 통증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나수민(28) 작가는 대학 시절 우리 귀에도 꽤 익숙한 ‘Don’t look back in anger’로 유명한 <오아시스(Oasis)> 등 영국 락밴드를 소재로 젊음을 그렸다. <오아시스> 밴드는, 현실의 기행이 있었지만, 대체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노래했다. 당시 그녀의 그림은 핑크색 또는 장미색를 주조색으로 화면을 빈틈없이 채워 활기찬 청춘을 그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의 눈과 마음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여전히 핑크색 물감이 그녀의 손에 있었지만 ‘공허함, 상실감, 소통의 부재, 외로움, 단절’을 이야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락스타에서 현실의 우리 젊은이에게로 눈길을 옮긴 연유를 물었다.

졸업 직후 인사동 모 화랑에서 최저 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급여를 받으며 부모의 도움으로부터 자립하고 화가로서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세웠다. 가벼운 주머니로 끼니를 해결하고자 주로 편의점을 들르면서 비슷한 상황의 편의점 임시직 또래 노동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그 젊은이들에게서 작가 자신을 보고 난 후 비슷한 처지의 청춘을 더 찾아 나섰다. 그렇게 첫 개인전 <사각지대>을 만들었다.

작가는 말한다. ‘젊음과 청춘의 시기를 우리는 핑크빛이라 한다. 그러나 말로만 핑크빛 청춘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모습을 담았다.’ 희망과 낙관의 상징색이 ‘외로움과 단절’의 여기 청춘을 그려 낼 때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만드는 효과를 낸다. 핑크빛의 역설이다.

대학 시절 생기 넘친 색과 형태로 빈틈없이 꽉 채웠던 화면에 성글게 빈구석이 생겼다. 어릴 적부터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핑크빛 장미색은 환한 웃음 가득한 생기의 상징에서 이제 ‘지금-여기 상실감에 불안한 청춘’을 그려냄으로써 묘한 불안감을 만드는 색이 된다. 아마도 이 묘한 불안감은 핑크색 주변을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파리한 회색빛 도는 중간색이 감싸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파리한 회색빛 기운은 슬픈 청춘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첫 개인전의 사회비판적 시각을 통해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가려는 밖으로 노출된 젊은이의 노동문제를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에서 청춘을 주목했다면, 두 번째 개인전 <무지개가 떨어지는 곳(2019)>에서 좀 더 내밀한 청춘의 개인적 일상으로 파고들어, ‘사회와의 소통을 거절하고 소외를 선택한 청년들’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그렇게 작가는 ‘무지개가 떨어지는 곳’에 움츠러든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引きこもり)’가 ‘살아가는 슬픈 청춘’을 담담하게 화면에 담는다.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몸짓의 청년, 아직 사회로 나서는 것이 두려워 망설이는 청년, 멍한 눈으로 누워서 핸드폰만 바라보는 초상화는 자화상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임시적인 일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 비천한 일로 인해 온몸이 눅진(burn out)해져 자발적 격리(소외)를 선택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줄 공감과 위로를 찾아 오늘도 작가는 핑크빛 물감을 쥐고 무지개가 떨어지는 곳을 찾는다.

 

나수민 작가

 

▷나수민 작가는...

중앙대 미술학부(서양화 전공, 2017) 졸업. 개인전 2회, 단체전 10회, 충북문화재단 등 작품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