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외로움,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곳’ /조각 백솔뫼편
박종석 미술평론가
[동양일보]큰 버섯 갓을 푹 눌러 쓰고 얼굴은 감춘 채 두 손을 다소곳이 앞에 모으고 조용히 한 형상이 서 있다. 의인화된 버섯 형상과 그 버섯에 튀어나온 듯한 여러 유기적 형상들은 백솔뫼(29) 작가가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천착하고 있는 삶과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의 시각적 은유이다. 작가는 근원 물음은 ‘외로움’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저도 그렇고. 제가 무척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던 사람들에게서도 외로운 면이 보였어요. 왜 그럴까. 생각하고 집중하다 보니 제 관심사가 온통 그곳으로 향했어요.’
작가가 대학 입학하고 20대 초반 누구에게서 어디에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모든 감정은 외로움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는 기억을 말 해준다. ‘제 심장에 확 꽂혔어요. 당시에도 지금도 확연히 정리되거나 설명할 수 없지만 어렴풋이 이해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이 외로움이란 감정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감정을 어떻게 조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어요.’
인간의 여러 감정을 성리학에서는 칠정(七情)으로 말한다: 기쁨(희喜), 성냄(노怒), 슬픔(애哀), 두려움(구懼), 사랑(애愛), 미움(오惡), 욕정(욕慾). 폴 에크만(Paul Ekman)은 얼굴 표현 연구(1970년)를 통해 초기에 ‘분노, 혐오, 두려움, 행복, 슬픔, 놀람’ 여섯 가지 기본적 감정으로 나누었고, 이후 여러 심리학자들에 의해 더욱 세분화 되고 있다. 작가는 이 모든 심리적 감정의 근원에 외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은 근원 감정인 외로움의 심리적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혼자 있다 보면 더 깊이 외로움 속으로 빠지는 순간에 어떤 생각도 없어지고, 그 상태 그대로 심취하게 되죠. 불현듯 그 순간 내가 나 자신을 느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나 밖의 어떤 것과 비교해서 나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온전하게 내 존재를 느끼는 순간을 잡았던 것 같아요. 그 순간을 작품으로 만들고자 해요.’
작가는 외로움과 함께 고독을 말한다. 인간관계의 단절로 인한 절망, 괴로움, 두려움에서 오는 감정 상태, 즉 쓸쓸함으로서의 외로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외로움 또는 고독은 ‘온전히 나 홀로 있음의 자각’을 의미한다.
‘외로움이란 누군가에게 인간관계의 부재와 결핍을 말하지만, 나에게 외로움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힘이예요. 우리는 이 원초적 상태의 끌림(당김)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그 힘의 영역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사유 공간으로써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예요.’ 작가는 자기 존재의 이유를 자각하는 곳,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텅 빔’을 보았고 그 곳을 외로움이라 이름한다.
앤서니 스토의 저서 <고독의 위로>, <3장 혼자 있는 능력> 시작점에서 본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의 인용구가 떠오른다. ‘누구나 내면 깊숙한 곳에 자신만의 작업장을 간직하고 있어서, 언제든 마음대로 그곳으로 들어가 자유와 고독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
▷박솔뫼 작가는...
충북대 조형예술학과(조소전공, 2017) 동 대학원(조소전공, 2022. 2월) 졸업예정.
개인전 3회, 단체전 30여회. 제2회 전국말조각공모전 대상(2015) 등 수상, 안성팜랜드 작품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