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너 때문이야!
임정순 수필가
[동양일보] 새해에는 ‘어~흥’ 호랑이의 힘찬 기운이라도 등장해야만 할 때이다.
세계는 지금 코로나로 인해 어처구니없게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봉쇄령이 무색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
이건 분명 경각심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온 우주를 날라 다니며 조롱하는 것의 괴력에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두 차례나 검사를 받고 불안과 초조로 결과를 기다리다 가슴을 쓸어 낸 일이 있었다.
이런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내 이웃의 가장을 빼앗아간 사건이 생겼다. 달포전에 단골로 다니던 떡집방앗간 남편이 죽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고추를 빻으러 가다가 문이 닫혔다는 말에 뒤 돌아 섰는데 막상 그 얘기를 듣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황망했다.
얘기인즉 백신 1차를 맞고 다리가 많이 부은 상태로 오로지 손님들을 위해 2차를 맞은 것이 탈이었다. 서울에 큰 병원까지 갔지만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로 가족들과 이별을 했으니, 남은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온전한 슬픔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가끔 들릴 때면 방앗간 안쪽에서 쌀을 씻거나, 참기름 들기름을 짤 때도 있고, 떡을 찔 때 모습도 간간 봤다. 늘 표정은 덤덤했다. 손님이 오갈 때도 본인 일에 열중했기에 그다지 말을 걸어 본적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건 물에 퉁퉁 불은 투박한 그의 손이다. 그 모습이 바로 그였기에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바로 죽음이다.
방앗간 문이 열렸지만 쉽사리 들어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한 이주쯤 지나 떡국 떡이라도 사야겠다는 맘으로 들어서는데 김이 서려 사람들이 잘 보이질 않았다. 그 남자가 서 있는 자리엔 아들이 있다. 주인 여자의 목소리에 내가 더 긴장했다.
“소식은 들었어요~~. 어떻게 일어섰어요?”
참 무슨 말을 해야 되는지. 손만 붙들고
“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일어났어요?”
“너무 억울해요.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았어요~~~”
또 다음 이을 말이 나오질 않는다. 무슨 말인들 위로가 될까. 서린 김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누가 알은척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고 맥이 풀릴 것이다. 그 자리에 있을 남편대신 아들이 있기에 맘대로 울지도 못할 생각을 하니 안타까워서 오랫동안 손을 놓지 못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둘째 아들은 정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고 싶을까. 힘든 일을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고 떠난 남편이건만, 자식 힘든 것은 못 보는게 어미 마음인데. 어쩌나. 그 안에 서린 김은 모자의 슬픈 표정이나 눈물을 서로 볼 수 없게 가려 주는, 차마 떠나지 못한 착한 주인 남자의 마음이 분명하다.
그곳엔 슬픔이 가득했다.
밖으로 나와 눈발이 휘날리는 찬바람에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데 몇 발짝 앞에 환한 얼굴이 분명 반가움에 웃고 있다. 내가 아는 그 여자라면 이곳을 떠난 지 꽤 여러 해 됐는데, 다가오는 여자는 통화하던 전화도 끊고 반가워했다. 그 여자가 먼저 말을 걸기 전에
“혹시 누구세요?”
“어~~어~ 성당에 다니세요?”
하얀 마스크로 얼굴을 반 이상 가렸으니 도통 착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더니만 둘은 머쓱해서 웃고 말았다.
“ 내가 아는 예쁜 사람인줄 알았어요.”
여자는 나를 툭 치면서 좋아라한다. 저리도 좋을까. 순간적으로 한 말이 대견해서 그냥 웃음이 나온다. 서로가 사람이 얼마나 그리우면 헛보일까.
이 못된 코로나야~~~ 범 내려 온다 ~~ 지금 당장 이 지구상에서 떠나거라!!
너 땜시 못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