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작정(酌定)

신동학 수필가

2022-02-06     동양일보
신동학 수필가

[동양일보]어머니의 술 담그는 솜씨는 인근에 자자했다. 맑고 투명하면서도 발그레한 빛깔 뿐 아니라 그 향과 맛도 일품이었다. 그 덕인지 어릴 때부터 술과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이백이나 송강은 세상의 근심을 잊으라고 술을 권했지만 나는 즐겁기 위해 마신다.

일찍이 현진건은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했다’ 고 했다. 일제 강점기의 많은 예술가나 지식인들의 고민에는 늘 술이 가까이 있었고, 예술성이나 저항과 극복의 정신을 고양시켰다. 지금 기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지만 술에 취한 명사들의 얘기가 주선이니 주성이니 하면서 풍류나 낭만으로 치장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술에 대해 관대한 것은 아마도 이런 역사적 배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주폭이나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도 알게 모르게 술에 대한 관대함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법률상의 형을 감경한 후에도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다시 여러 사정을 고려해서 형을 깎아주는 것을 작량감경(酌量減輕)이라 했을까.

술은 상상력의 화수분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술을 가까이하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고들 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신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였을 것이다. 신은 인간이 술을 마시면서 만들어 낸 상상력의 결과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술은 마법사다. 앞에 있는 여인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도 하고, 없던 용기가 생기는 것도 모자라 만용까지 부리게 한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술 속에 진실이 있다는 것과 통한다. 한 잔의 술은 웬만한 분쟁이나 갈등을 자연스럽게 해소하기도 한다. 인간을 개로 탈바꿈 시키는 것도 술의 마법이다.

이유와 의미는 다르지만 오늘날도 술 권하는 사회이기는 마찬가지다.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며 사회가 굴러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보약이 될 수도, 마약이 될 수도,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게 술이기도 하다.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마시는 것이 수작(酬酌)이다. 수작이 과해지면 허튼 짓거리가 나오니 수작질이다. 수(酬)는 잔을 돌리거나 술을 권하는 뜻 외에 갚다, 보답하다 등의 뜻이 있고, 작(酌)은 따르다, 마시다, 짐작하다, 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 술자리의 으뜸은 친구나 친지와 서로 고마워하고 격려하며 술잔을 주고받는 것이다.

나나 상대의 주량과 취기를 참작(參酌)하고 짐작(斟酌)하여 적당한 때 끝을 맺는 배려와 지혜가 있다면 더 즐거운 술자리가 되지만, 강제로 권하거나 술이 넘치는 줄도, 인사불성이 되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無酌定) 마시는 것은 주정뱅이가 되는 지름길이다.

곧 설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맘때 술 익는 냄새가 동네 집집마다 가득했다. 우리 집 아랫목에 있는 술독에서도 향기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다. 오랜 만에 만난 가족 친지나 친구들과 한잔 걸칠 작정들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정도를 넘고 있지 않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 나도 그렇지만 새해부터는 진정한 수작만을 하겠다는 작정(酌定)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