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 끝나지 않은 스승의 길
양미환 수필가
[동양일보] 책 한권이 택배로 배달되었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배달된 책은 보낸 이가 책의 작가로 돼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릿속을 탈탈 털어도 책의 작가는 나에게 책을 보낼만한 근거가 없는 작가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끝내 포기하고 읽고 있는 책이 「야생초 편지」라는 책이다.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고 있다.
며칠 후 중학교 때 은사님이 보낸 몇 권의 책이 택배로 배달되었다. 싸고 또 싼 택배의 겉표지 한쪽에 “지난 번 보낸 「야생초 편지」는 받아 보았는지?”라고 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모든 실마리가 풀리고 해답을 얻었다. 「야생초 편지」책을 보내준 분은 바로 오십 년 전 중학교 시절 국어를 담당하신 내 은사님이었다.
바로 전화를 드리고 「야생초 편지」가 발송인이 모르는 사람이라 연락도 못하고 열심히 읽고만 있다고 말씀드렸다. 은사님이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해서 보낸 책이 착오로 발송인에 작가의 이름이 적힌 것이다. 「야생초 편지」를 오래 전에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라 내가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넷 서점을 통해 보냈다는 은사님의 말씀은 책보다 더한 감동으로 내게 남았다.
「야생초 편지」의 작가는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가 국가기관의 조작극이었음이 밝혀져 석방된 황대권 님이다. 13년 넘게 감옥생활을 하며 감옥에서 야생초를 관찰하고 연구한 야생초 관찰일기를 동생에게 보내는 옥중서신 형태로 쓴 책이 「야생초 편지」다. 책 읽기의 진도가 나가면 나갈수록 제자에게 읽히고 싶어 한 노은사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감동은 두 배가 되고 있다.
은사님은 중학교 시절 과제로 낸 시에 “참 잘했어요. 재능이 있으니 노력하세요.”라고 써 주셔서 어린 내 가슴을 뛰게 한 분이다. 태어나 참 잘했다는 말을 처음 듣는 순간이었다. 그 후 독서량은 빠르게 늘어났고 혼자 글 쓰는 시간은 행복했다.
야생초를 가꾸는 마음과 제자를 가꾸는 마음이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제자의 삶 또한 거친 야생의 잡초였다. 이름 없이 들판에 피었다 아무도 모르게 사위어질 잡초 하나를 스승은 오십 년이 넘도록 관찰하고 있다. 평생 몸담은 교직생활에 꽃이 된 제자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잡초에 이름을 찾아주고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야생초 편지」 작가의 마음으로 삶의 들판에 홀로 바람을 견디는 야생의 잡초 하나에 긴 스승의 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제자에게 들려 줄 이야기도, 읽게 하고 싶은 책도 노은사는 넘치게 많다.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생으로 마음은 더없이 바쁘고 조급할 것이다.
열세 살의 소녀는 오십 년 세월을 거칠게 사느라 꽃이 될 수 없었다. “참 잘했어요. 재능이 있으니 노력하세요.”라고 써 주던 젊은 국어 교사는 이제 팔순이 넘어 노은사가 되었다. 직업적 교사의 수명도 다했다. 그러나 좋은 책을 권하고 그 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글을 쓰는 제자의 사고가 깊어지기를 바라는 스승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생이 다하기 전까지 야생 잡초의 스승의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 잡초 하나의 이름을 불러 꽃이 되게 한 스승의 은혜는 가히 없다.
야생 잡초에게 들려 줄 이야기가 멈추지 않도록 노은사의 남아 있는 시간이 무한대 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