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클래식이야기/ 16. 화려함 속의 따뜻함, 리스트 ‘6개의 위안’
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동양일보] 피아노 음악들 중에는 화려한 기교, 방대한 스케일, 빠른 템포 등의 이유로 꽤 괜찮은 피아니스트도 치기 힘들다는 ‘난제’로 불리는 곡들이 있다. 리스트의 몇몇 음악도 이에 포함된다. 화려한 음악과 퍼포먼스, 그리고 까다로운 테크닉을 사용하기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는 작곡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도 뛰어나 ‘하늘이 내린 피아니스트’라 칭송받기도 했다. 헝가리 출생으로 그의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하이든이 30년간 근무했던 에스테르하지 백작 가(家)의 집사였다. 리스트가 태어날 즈음 하이든은 이미 서거하여 두 사람이 만날 기회는 없었으나,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영향으로 리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어렵지 않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리스트는 오페라, 합창곡, 성악곡 등도 작곡했지만 그 스스로 상당히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탓에 화려한 기교의 피아노곡을 1천여 곡 작곡하였다. 피아노의 기교에 특히나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에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던 니콜로 파가니니의 영향으로 보인다. 1832년, 그의 나이 22세에 파가니니의 화려한 기교의 바이올린 연주를 본 리스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던지, 아니면 미치광이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 피아노로 선보일 수 있는 모든 기교를 구사해냈다고 한다. 리스트의 대표곡 라 캄파넬라, 초절기교 연습곡 등을 살펴보면 그의 이러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 중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는 악보만 봐도 그 화려함이 드러나는데, 우크라이나 영웅 마제파의 “인생역전 영웅담”을 담은 이 곡은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김소연 배우(천서진 역)가 연주를 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본인의 크나큰 과오를 뉘우치기는커녕 자기합리화를 통해 스스로 영웅화 시키는 스토리를 담아 리스트의 ‘마제파’의 맥을 따라 걷는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마제파’의 끝부분에 리스트는 위고의 시 구절 “그는 마침내 죽었다. 그리고 왕으로 부활한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프란츠 리스트는 피아노 실력 뿐 아니라 외모와 카리스마, 눈길을 끄는 연주 퍼포먼스로도 유명했는데, 동시대 작곡가인 로베르트 슈만이 "빈의 어느 유명 판화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리스트의 얼굴은 어떤 화가라도 그리스 신의 모델로 삼을 만 하다고 말했다."라고 그의 저서에 적었다 하니 리스트는 외적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던 듯하다. 현시대에는 아이돌 가수들의 팬덤이 많이 형성되어있지만 19세기에는 리스트가 독보적인 존재였다. 당대 유명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고 칭할 정도로 많은 여성 팬 층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의 공연을 보고 실신하는 팬들은 부지기수였고 마차를 동원해 그의 뒤를 쫓는 수많은 여인들을 비롯하여 그의 머리카락, 마시다 남긴 커피조차 수집하고자 하는 극성 팬들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걸맞게 리스트는 무대 퍼포먼스를 준비하곤 했는데 공연 시작에 객석으로 악보를 던지고 전례 없이 암보로 전곡을 연주하여 많은 환호를 받았다. 이렇듯 사고가 자유로웠던 그는 쇼팽, 슈만, 바그너, 베를리오즈 등 당대의 많은 음악가들의 왕성한 음악적 교류를 통해 본인의 곡을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리스트의 삶이 화려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많은 음악가들처럼 그 역시 연주회와 그 외의 후원들을 받아 음악활동을 지속해야 했다. 리스트의 피아노곡 6개의 ‘위안( Consolation)’은 역사학자 조제프 들로름의 시집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으로 화려함이 아닌 그의 낭만적인 감성을 엿볼 수 있는 따뜻한 곡이다. 그 중 3번은 “고독 속의 신의 축복”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이 곡은 사랑하던 여인 캐롤린이 남편과의 이혼이 거부되고 병으로 힘들어하던 당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작곡된 곡이다.
“음악은 상처가 난 마음에 대한 약이다”라는 어떤 이의 말처럼 리스트의 음악이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