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배터리 전쟁, 양보할 수 없는 1등 자존심

-부제 : 대한민국 1등을 빼고 글로벌 경쟁 가능할까? 송민호 충북도 산업육성과 주무관

2023-06-06     동양일보
송민호 충북도 산업육성과 주무관

[동양일보]얼마 전 손봉호 교수라는 분의 ‘가난한 나라 유학생일지라도 자존심만은 지키려고…(출처 국민일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그가 미국에 있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1학년 중에 전체 2등을 해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나중에 전체 1등을 한 미국 친구가 가난한 외국 학생이 하나라도 더 장학금을 받도록 장학금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장학금이 상이 아니라 얻어먹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고 부끄러웠다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고 미국인 친구의 배려와 손봉호 교수의 양심에 박수를 보냈다. 반면 문득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들과 같은 배려와 양심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현재 이와 같은 상황이 똑같이 펼쳐진다면 아마도 지금은 1등인 학생은 “내가 1등이니까”, 2등인 학생은 “1등인 학생은 지난번에 받았으니까”, 3등인 학생은 “나중에 1등 할 테니까”, 3등 이하인 학생들은 학부모 찬스라도 써가며 장학금 타기 경쟁을 하지 않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장학금 타기 경쟁과 같은 모습이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 사업’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특화단지 지정 사업’은 정부가 초격차 기술의 선제 확보 등 글로벌 첨단기술 속도 경쟁의 우위를 점유하고 있다. 나아가 첨단전략산업의 안정적 생산거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글로벌 산업 클러스터를 신속히 육성하고자 추진하게 된 것이다.

일부는 미완의 밸류체인과 일부의 장점을 완성형이라고 과대 포장하거나 담보할 수 없는 장밋빛 전망이 담긴 경제 유발효과를 앞세워 자신들이 특화단지 지정 최적지라 우기고 있다. 이에 이차전지의 태동과 성장을 함께 하며 누구나 인정하는 이차전지 1등 지자체의 입지를 다져 온 충북으로서는 매우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충북이 손봉호 교수에게 장학금을 양보한 미국인 친구처럼 타 지역에 ‘특화단지 지정’을 양보한다고 해도 충북의 이차전지 1등 위상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충북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차전지와 양극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국내 1위 기업 LG에너지솔루션과 에코프로비엠이 있다. 더구나 이 두 기업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첨단기술 혁신과 R&D의 중심지로 조성’하겠다는 정책 실현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더팩토리와 R&D캠퍼스 단지를 오창에 구축하고 있다.

또 글로벌 최고 수준의 이차전지 제조·시험평가·분석 클러스터가 오창에 구축돼 있다.

‘특화단지 지정’양보는 그동안 글로벌 이차전지를 선도해 온 대한민국의 위상과 글로벌 이차전지 심장 역할을 해 왔던 LG에너지솔루션의 자존심에는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충북이 이번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차전지 글로벌 1등 기업 LG에너지솔루션이나 첨단기술 혁신과 R&D없이 과연 소재 기업의 생산량만으로 이차전지 세계 1등의 위업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대한민국 1등, 충북의 ‘이차전지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 없이 과연 세계와 경쟁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