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공주시 3대 가업 이은 ‘한옥 건축의 지휘자’
■ 공주시 대목(2478호) 한진석 도편수
철강 직장인서 인생 대전환... “가문의 DNA 받은 천직”
공주 선화당, 창덕궁 대조전 등 중요 문화재·사찰도 보수
대학 강의 후학 양성에도 힘써... “무형문화재 지정이 꿈”
사찰 향교 고택 비각 등 건축물의 공통점은 '한옥'이다. 기품과 위엄으로 우리 건축문화의 우수성을 느끼게 하는 한옥을 짓는 사람, 크게는 대목과 소목으로 나뉜다.
도편수라고도 불리는 대목은 대형 목재를 이용해 집의 큰 틀과 뼈대를 만드는 사람이다. 역할의 특성상 설계, 시공, 감리까지 총괄 책임지는 ‘한옥 건축의 지휘자’이다.
공주에서 3대째 대목(2478호)의 가업을 승계해 열일 하는 한진석 도편수.
“원래 목수 일은 염두에 둔 적이 없어요. 가끔 아버지 일을 도와 드리려고 공사현장을 따라 갔던게 전부였죠. 적성에 맞으리라고 생각한적도 없고요.”
그는 원래 쇠를 다루던 철인(鐵人)이었다. 청년 시절에 당진의 한보철강(현 현대제철)에서 쇳물을 만지던 엔지니어였으나 1998년 IMF를 맞았다.
회사의 부도로 잠시 쉬던 중 당시 대목이던 아버지(한동현 도편수, 2015년 작고)의 부름을 받아 집에 내려온 그 길이 스물 여덟살의 한 도편수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운명이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한창수 도편수)로부터 사사한 대목이었으니 한 도편수의 입문은 자연스레 3대 가업승계가 됐다.
이인면 이인리에 자리잡고 있는 3500평 규모의 작업장엔 한옥에 쓰이는 대형 목재가 가득하다. 우리 땅에서 자란 육송부터 북미산 더글라스까지 다양한 목재가 한 도편수의 직업을 알게 한다.
“목수에게 가장 큰 꿈이 뭔지 아세요? 돈 명예보다 제재소를 갖는 것입니다. 작업장 말이죠.”
좋은 집을 지으려면 좋은 재료, 즉 우수한 품질의 목재가 1순위다. 그걸 가져다 쌓아 놓기만 해도 마음이 행복하다는 한 도편수.
그래서 그에게 제재소는 단순한 작업장이 아니다. 먹을 긋고 치수를 재고 정교하게 자르며 한옥 건축의 ‘예술’을 준비하는 리허설 무대이다. 2013년 문화재보수단청 업체로 등록을 해서 키워 온 목재 야적장이 오늘의 무대가 됐다.
목수 일을 시작한 한 도편수는 아버지로부터 나무 고르는 일부터 배웠다. 아버지는 질 좋은 국산 육송을 유난히 고집했는데 그게 값이 꽤 비싸 집을 짓고 나도 큰 수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초보 목수인 아들에게 늘 “집은 인격이다. 인격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 욕심보다 좋은 재목으로 집 잘짓는게 진짜 목수다”며 장인정신을 가르쳤다.
“도량주라는게 있어요. 나무 원목을 다듬질 없이 모양을 그대로 살려서 짓는 방식인데 이게 큰 원목을 굴려가며 하는 일이라 손과 시간이 몇곱절 더 들어요. 당연히 ‘남는게 없는’ 일이죠.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그걸 고집했어요.”
내 집 짓는 마음으로 한옥을 신축하거나 문화재 보수를 마친 후 흐뭇한 표정으로 건물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은 한 도편수에게 ‘신앙’이 됐다.
그는 1998년 용인시 경주 김씨 사당 신축공사 참여를 시작으로 아버지 밑에서 착실하게 일을 배우며 대목의 자질을 키워나갔다.
이후 천안과 화성, 경남 울진과 창원, 강원도 파주 연천 등의 공사 현장을 따라 다니며 기술을 익히고 안목을 넓힌 덕분에 2001년 문화재수리기능 자격을 따내고 진정한 문화재 장인의 실력을 입증해 보였다.
2006년 안동시 임하면의 의성김씨 한옥 신축공사의 책임 대목으로 나서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이후 전주 김씨 제선공파 사당과 남양 홍씨 가옥 신축공사 등을 직접 이끌었다.
2009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청풍각 신축공사 도편수를 맡았고, 안성 청룡사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보물824호)도 참여했다
공주시 선화당과 유구읍 소재 고간원지(고려후기 문신 문극겸 관련 사당) 보수, 문화재청이 발주한 파주 소령원 정자각 보수와 대한불교조계종 진천 영수사, 금산미륵사 보수 등을 완벽하게 해냈다.
2022년에는 창덕궁 대조전(보물)과 희정당 보수공사와 부여의 여흥 민씨 고택(민속문화재) 보수공사를 완수하고 현재는 공주시 충청감영 조성공사를 하고있다.
아버지의 DNA를 이어받은 한 도편수의 장족의 발전은 자신도 놀라게 했다.
“일을 하다보니 대목이 천직이더라고요.”
인정받은 능력만큼 상복도 따라 2012년 문화재청장 공로상, 2016년충남도지사 표창에 이어 2022년에는 국회부의장 표창을 받았다.
후학 양성에도 나서 지금은 부여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문화교육원과 전남도립대학교 등에서 한옥건축 관련 강의를 한다.
작업장에서는 한옥 건축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실무 및 체험교육도 진행중이다.
한옥건축, 목재회사, 제재소 운영 등 사업적으로도 충분히 일군 그에게 소망이 하나 있다.
“무형문화재 대목장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명예나 외형적 치장을 위한 사욕이 아니라 소중한 전통건축을 후학들에게 온전히 물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착실히 준비중입니다.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한 도편수의 ‘꿈은 이뤄진다.’
공주 유환권 기자 youyou9999@dy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