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유정아 청주시 상당보건소 보건정책과 주무관

2023-09-03     동양일보
유정아 청주시 상당보건소 보건정책과 주무관

[동양일보]“죽으러 왔습니다.”

한 민원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겠다고 오면서 한 첫 마디였다. 눈빛도 비장했다. 삶의 마지막을 결정할 간단한 한 페이지의 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아침에 눈 뜨면서, 옷 갈아입으면서, 차를 타고 오면서, 걸어오는 걸음 내내 고민을 거듭해서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전사 같다.

사유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만난 사람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보건소에 찾아왔다.

건강보험 가입자 20만명을 분석한 결과 죽기 전 1년 동안 쓰는 의료비가 10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일반 환자들은 1년 동안 100여만원을 의료비에 쓴다고 하니 열 배가 넘는 의료비를 죽기 전에 지출하는 것이다. 모든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것이 죽음이었다면 이제는 나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된 것이다.

간혹 안락사로 오해하고 신청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안락사는 적극적인 안락사와 소극적인 안락사로 나뉜다. 적극적인 안락사는 생명을 단축시킬 목적으로 죽음을 적극적으로 돕는 행위이다. 예를 들어 사망에 이르는 약물을 투입해서 환자를 사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극적인 안락사는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 확실할 때 처치나 지연 등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분이나 영양분, 산소를 공급하지 않는 것이다.

존엄사 또는 연명의료 중단이라는 것은 임종 과정에 들어간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부담이나 해가 되는 의료 행위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등을 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것이다. 여기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돼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고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인 판단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연명치료 중단은 사전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의사를 밝히게 되는데 실제로 2016년 웰다잉법이라고 불리는 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된 이후 무려 189만명이 이 의향서를 작성했다. 65세 이상 작성자가 145만명으로 노인 7명당 1명꼴로 연명치료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라고 했다. 사람은 출생(Birth)와 죽음(Death) 사이에서 수많은 선택(Choice)을 해야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 내일의 삶을 결정한다. 내 삶의 마지막을 선택해 둘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이 연명의료 결정 제도를 알고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