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추석콩트/ 선을이

박희팔 소설가

2023-09-26     동양일보

[동양일보]마당 건너 집에서는 야단들이다. 일본에 있다는 선을이 아버지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온 모양이다. 아마 추석이 가까워 오니 무슨 좋은 소식이 있는 것일까?

선을네는 5식구다. 한 40살은 돼 보이는 키가 작달막하고 갸날갸냘한 몸매의 선을이 엄마, 이의 큰아들인 선을이, 둘째인 원을이, 셋째가 역시 사내인 두을이, 넷째가 막내로서 딸인 선숙이 해서 다섯이다. 우리는 4식구다 엄마, 누나, 나 그리고 사내 동생 해서 넷이다. 나는 큰애인 선을이와 동갑인 11살이고. 둘째 원을인 내 동생과 동갑으로 9살이다. 그 집의 셋째인 두을인 6살로 건너뛰고, 선숙이는 4살로 내 누나 15살과는 나이 차가 많다.

우린 서울서 피란을 와서 남의 집 문간방에 살고, 선을 네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선을 네가 한 칸 방에 살고 있는데, 선을이 외삼촌 되는 사람이 얻어 준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선을이 엄마의 오라버니가 전라도 땅에 사는 여동생을 친정동네로 데려온 것이다.

선을이 엄마가 결혼을 했으나 가난하여 그 남편이 돈 벌겠다고 일본에 몰래 들어가 6.25가 나는 바람에 못 들어오고, 소식이 끊겼다는 거다. 그러더니 한 3년 만에 소식이 왔다.

“나는 일본에서 잘 있다. 기회 봐서 들어가겠다.”

하고 짤막한 글이 인편에 전달됐다고 하더니, 이번 추석엔 아이들의 옷이 온 모양이다.

“네 애들이 그 동안 컸는데도 치수를 아주 잘 맞게 보냈네요.”

선을이 엄마가 내 엄마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선을인 내게 추석비심으로 옷 온 것을 자랑했다.

“이거 일본에 기신 울 아버지가 이번 추석에 보내신 거다. 잘 맞지?”

“그래 잘 맞는다. 니 동생들 것두 잘 맞지.”

“그려, 우리 끝 동생 선숙이 껀 분홍색 치마저고린데 꼭 맞어.”

“거기 우리나라 집에서 하는 옷가게에서 샀나 보다. 치마저고린 거 보니까.”

우린 엄마가 손재봉틀로 몇 밤을 새워서 피란민들에게 나온 누런 담뇨로 만들어준 우리 형제의 바지와 역시 누런 담요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누나에게 입혀 좋아 했지만 그걸 보고 일본에서 보냈다는 신식 옷을 입은 그 애들은 얼마나 우리를 깔보았을까를 생각하면 낯이 붉어지지만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황송했던 것이다. 엄마가 며칠 몇 밤을 새워 만들어 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추석비심은 우리엄마가 밤새워 만들어 준 누런 담요로 만들어 준 바지다. 그리고 우리 누나 것은 네 끝동생인 선숙이의 울긋불긋한 치마저고리는 아니지만 역시 우리엄마가 밤 새워 만든 치마저고린데 아주 멋져.”

나는 미리 선수를 쳤다. 선을이가 일본에서 보냈다는 이번 그들의 추석비심을 자랑하는 걸 막을 심산에서다.

“그래에,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가 보내서 고맙다구 우리엄마가 편지래두 보냈으면 좋지만 주소도 없이 사람 편에 보냈기 때문에 편지도 못해서 얼마나 속상해하는 지 몰라.”

그리고 선을인 좋아하는 기색 없이 우울한 표정이었다. 선을이의 그 표정은 제 엄마를 무척이나 안 됐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애 엄마는 읍내의 5일장은 물론이고, 30 리, 50리나 떨어져 있는 장날까지도 걸어서 채소를 파는 억척으로 지들 5남매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엄마를 생각해서였을 거다. 나는 곧 후회했다. 그러한 선을일 두고 내 엄마를 자랑했으니 말이다. 선을이 엄마와 우리엄마는 같이 장장을 다니며 채소를 동네서 받아다 팔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엄마와 니 엄마는 친 형제처럼 지내는데 내가 잘못했어. 우리 엄마만 생각해서 말야!”

“아냐, 괜찮아 우리 엄마와 니 엄마와 같이 우리 4남매도 니들 3남매와 형제처럼 지내는 사인데 뭐!”

정말 그랬다. 같이 한 마당 안에 살면서 엄마끼리는 같이 장사하고, 우리끼리는 같이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였던 거다.

“그렇게 여겨주니 고마워.”

나는 정말로 선을이의 그러한 말을 전적으로 고마워했다.

그리고 우린 다음해 봄에 서울로 왔다. 그해 추석이 가까워지니 엄마가 말했다.

“선을이 엄만 잘 있는지 모르겠다. 선을이 아버지에겐 올 추석에도 추석비심이 왔나 모르겠다.

난 엄마의 그 말에 선을이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이 곧 왔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대. 그래서 올해부터 설비심, 추석비심이 안 와.….”

뜻밖이었다. 작년에 추석비심을 가져온 사림이 그러더라는 거였다.

엄마는 그 소리를 듣자 우리 추석비심과 함께 걔네 형제들 것도 똑같이 보내주었다. 그리곤 말했다.

“걔 엄마가 얼마나 실심을 했을까.”

그리곤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마 오실 때 걔 엄마와 장마다 똑같이 다녔던 일을 행각 하는 듯 했다.

“지금도 장마다 다니는지….”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선을이가 사는 시골에 내려갔다. 그때는 읍내로 이사와 2층집의 2층에 세로 살고 있었다. 내 잠자리를 선을이 옆에 잡아주면서,

“엄마두 안녕하셔. 그 형님이 가실 때 내게 준 겨울 잠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데.”

그해 추석엔 우리 형제가 입던 옷들을 보내주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형님이 보내주신 옷들이 우리 애들한테 꼭 맞어요. 고마워요 형님.”

그리곤 소식이 끊겼다가 내가 경기도 중학원에 있었던 겨울방학에 서울에서 선을이와 만났다. 그때 그는 서울의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도 하릴없어 내가 좋아하던 낚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때 내 옆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이, 젊은이 낚시솜씨가 대단하네. 근데 보아하니 날마다 낚시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마땅한 직장이 없어 보이는데, 어때 나 있는 회사에 다녀볼 생각 있어? 하는 거야. 그래서 지금 그 사람 회사에 다니고 있어. 그런데 이번 추석에 동생들 추석비심을 해 줘야 하는데 말야. 어때 너는 서울에 있으니까 나보다 나을 꺼 아냐.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 회사 물건을 좀 팔아주는 게 어때?”

“무슨 물건을 만드는 회산데?”

“공책, 책받침 이런 거야”

“그래, 그럼 공책 한 50권 하구 책받침 한 30개 사줄게.”

내가 돈은 없지만 선뜻 그 마음이 고마워서 선뜻 대답을 했다.

그리곤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내가 충청도 고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였다. 그날은 선생님들끼리의 회식이 삼겹살집에서 있은 때였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누가 내 등을 만지면서,

“암만 봐두 너 같어서 아는 체를 하는 거야.”

올려다보니 낯이 익어보였다.

“누구신가?”

“나 선을이야, 나두 널 긴가민가 했어.”

“그래? 이거 얼마만이야. 너 몇 살이야?”

“쉰셋, 너하구 동갑이잖어.”

“그런데 그렇게 늙어 보여?”

“그러는 넌 젊어보인다 야!”

“그래, 지금 뭐해?”

“나 지금두 그 회사에 다니구 있어. 나 영업부장 됐어 야. 그러니까 더 바쁜데. 그 동안 경기도 충남 해서 안 다녀본 학교 없지만 이제 충북 학교에두 다녀볼까 해서 오늘 첨 여기에 와봤어. 그래서 이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들하구 저녁식사 좀 대접할랴구 왔더니 아무래두 너 같어서 말이야. 그래 지금 뭐해?”

“나 지금 여기에 있는 공업고등학교에 있어.”

“선생으루”

“응 교사루.”

“넌 하교 다닐 때두 공부 잘 했잖여. 잘됐다 야. 그래 애들은 몇이야?”

“둘, 남매야. 다 고등학교 다녀. 넌?”

“난 삼남맨데 중간애가 딸이야. 첫아들과 딸은 고등학교에 다니구 끝애는 중학생이야.”

“참, 니 동생들은 어떻게 됐어. 잘 있어?”

“응, 둘째 원을인 경찰인데 이 충북에 있다는데 어딘지 몰라. 그리고 셋째인 두을인 대전서 장사하구 막내인 선숙이는 시집가 잘 살아.”

선을이 고종사촌이 지금은 시골의 읍내에 사는데 내가 피린시절에는 같은 동네에 살았다. 나하곤 동갑으로 선을이하고도 동갑네끼리 사이가 좋았다. 내가 충북으로 올 당시 시골읍내의 철길에 인접해 산다는 선을네집엘 그 애와 같이 갔다. 읍내의 2층에 살다가 철길가로 이사를 했다 해서 집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애 이름이 용언이다. 그때는 선을인 서울의 회사에 있었다. 해서 두을이와 선숙이 둘이 있었다. 두을인 용언이 동생이 한다는 철공장의 철공으로 있다 하고 선숙인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두을이와 같이 살고 있었다. 두을이 건장했고 선숙인 활짝 핀 동안이었다.

“큰형은 서울 회사에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둘째 형은 지금 뭐하지?”

“경찰 된지 얼마 안 돼요. 추청북도 어디라는데 잘 몰라요.”

“그래에, 선숙이 인제 시집갈 나이 됐네. 나 알아 보겠어?”

“예.”

이렇게 해서 두을이와 선숙일 보았을 뿐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데 셋째는 대전에서 장사하고 선숙인 시집가서 잘 있다 한다.

“잘됐네.”

“어머니 안녕하시지.”

“인제 70이 넘으셨는데, 그래두 정정하셔.”

“나 지금두 잊히지 않아. 아버지 일본서 돌아가시구. 니 엄마가 우리 형제들 추석비심 해 주신거. 그거 보통 힘든 게 아닌데 말야,”

“니 엄마하구 우리엄마하구 보통사이었냐. 그리구 니 형제들하구 우리 형제들이 보통 사이었냐.”

“그런 거 생각하믄 우리가 너무 무심했어.”

“그러게 말야. 자주 만나야 하는데 말야”

“그래 소식아래두 종종 보내자, 우리 얘기가 너무 길었나 보다. 내가 오늘 내야하는 자린데 말야. 나 가 볼게.”

그리고 선을인 내 등을 몇 번 두드리고 휭 하니 저쪽자리로 갔다.

나는 오늘 삼겹살파티가 달갑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네 발 달린 고기만 먹으면 탈이 났다. 우선 입에서부터 달갑지 않았다. 그래도 꾹 참고 삼키면 구역질이 났다. 그래서 방안을 뛰쳐나온다. 그러면 엄마가 따라 나와,

“엄마가 잘 못했어. 네발도치만 먹으면 탈이 나는 걸 뻔히 알면서 억지로 멕였으니 이를 어쩌면 좋으니.”

그러면 나는,

“아냐 그래서 그런 게 아냐. 조금 있다 들어가 게!”

하고 변명을 하면 엄마는 쯧쯧 하고 들어갔다.

여기 이 자리에 온 것도 아직 어렸을 때 일이 생각 나 마지못해 따라나서긴 했어도 탐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랬는데 저 선을이를 보니 입맛이 싹 가셨다. 그래서,

“나 아까부터 배가 살살 아팠어. 먼저 나가볼게”

그리고는 그 자리를 나왔다. 그리고 서울서 내려온 엄마한테 갔다.

“엄마, 나 오늘 선을이 만났어!”

“선을이, 우리 피란 갔을 때 그 애 말여?”

“응, 맞아. 그런데 많이 늙어 보였어.”

“그 애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더니 그래서 그런가?”

“그 애 엄마하구 친했지?”

“그럼, 시골에 있을 때 꼭 붙어 다녔지. 나보다 세살 아래였지 아마.”

“우리 서울 올라와서 추석비심으루 선을이 형제들에게 보낸 거 아직두 생각난데 고마워서,”

“선을이 엄마 너무 일찍 죽었어, 애들 생각하면서 끌탕을 그리 하더니, 예순두 안 돼 갔지 아마.”

“그러니 선을이가 그 아래 동생들 생각하구 고생이 많은가 봐.” “글세 말이다.”

그래서 그 이듬해 추석이 임박해서 선을이 안부를 물으려고 그의 회사로 전화를 했다.

“영업부장인 그 이선을 씨요?”

“에, 좀 대 주세요?”

“그 양반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예, 왜요?”

“몰라요 저는.”

나는 그 고종사촌인 용언이에게 전화를 했다,

“걔 그 둘째 원을이하구 둘 다 죽었어.”

“왜?”

“모르지 장삿날 연락이 와서 갔다 왔지만 왜 죽었는지는 몰라. 얘기를 안 하니까.”

그러니까 그 삼겹살 가계에서 만난 게 끝이었다.

사실 이번 추석에 필요한 게 뭐냐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걸 선을이에게 추석비심을 겸해서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다.

“선을이 막내가 중학생이라구 했으니까 지금 쯤 중3이 됐거나 고등학생일 거야. 선을이 댁이 얼마나 고생이 많겟어. 그래서 말인데 선을이 막내에게 이번추석에 추석비심 격으루 조그마한 선물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데요?”

“참 잘 생각했다. 내 눈은 어둡지만 그 애 입을 옷은 내가 재봉틀을 돌려볼 께,”

“엄마가 그렇게 할 수가 있겠어요?”

“선을이 엄마 보고 해볼라구 해. 선을이 엄마하구 보통사이였냐?”

이렇게 해서 엄마는 선을이 막내 옷감을 손수 장에 가서 사오더니,

“선을이와 넌 동갑이구 덩치가 같고 선을이 막내도 다 컸을 가 아니냐. 그러니 너한테 맞추면 되겄네?”

“그래요, 나한테 맞추면 될 거야요.”

이래서 선을이 막내의 추석비심을, 윗도리는 긴팔의 얼룩얼룩한 셔츠로 하고 바지는 맨 나중에 본 선을이가 입었던 색깔의 천으로 했다. 엄마는 그걸 사흘 밤을 새워 앉은뱅이 재봉틀을 돌렸다.

그러시는 걸 옆에서 본 나는, 피란시절의 일본에서 온 추석비심의 옷을 입은 선을이의 모습과 엄마가 주고 온 잠바를 입고 장장을 누볐을 선을이 엄마가 떠오르고, 시골을 떠나오고 선을이를 비롯해서 그 형제들의 추석비심을 엄마가 해준 일, 그리고 선을이가 서울회사에 있을 때 추석비심 격으로 공책과 책받침을 사주었던 일들, 그리고 삼겹살집에서 내 등을 가볍게 두드려준 선을이를 떠올렸다.

참 그 애가 가다니….

나는 선을이 고종사촌인 용언이에게 선을네의 주소를 물어, 선을이 막내의 추석비심을 추석이 임박하여 소포로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