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예술인의 생애와 예술

2023-12-11     동양일보
이기원 화가

 

[동양일보]1. 미술인 이기원(1927.5.24.~2017.11.4)



화가 이기원(李基遠 1927.05.24 ~ 2017.11.14.)은 청주시 북일면에서 태어나 청주사범학교로 진학, 안승각의 제자로 그림을 시작했다. 청주사범학교 재학 중인 1944년 제23회 선전(鮮展)에 ‘풍경’을 출품하여 입선한 뒤 1946년에 청주사범학교 동기생 정창섭 등과 서울대에 같이 입학했다. 당시 안승각 제자 11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이기원은 2년만에 중퇴하고 청주로 내려와 교사생활을 하면서 작업 활동을 병행하였다. 청주에서 7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발령받아 재경 충북미술작가 전시에 참여하며 고향과의 인연을 이었다. 70년의 화력(畵歷)을 오로지 추상이라는 외길을 걸어온 이기원의 예술세계는 엄격한 미적 질서를 추구하는 ‘기하학적 추상’에 천착하며 간결하고 대담한 색채와 단순미를 추구했다.

이기원 작-투영 73-5(충북갤러리).

 

이기원은 국전 추천·초대작가로 활동했으며 1971년 인도트리엔날레전, 아세아국제미술전, 재경충북작가전 및 서울가톨릭미술가회전 등 꾸준히 현대미술의 현장에 있었다. 특이한 것은 1968년 삼보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을 제외하고는 평생 개인전을 개최하지 않았으며 또한 기증 외에는 작품을 한 점도 판매하지 않았다.

 

엄재원 인물.

 

2. 미술인 엄재원(1928~2013)



화가 엄재원은 1928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청주사범학교에서 안승각을 만나면서 그림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엄재원은 소년가장으로 가정경제가 어려워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사범학교 졸업후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았다가 ‘중등교사 자격 검정시험’을 거쳐 중등학교 미술교사가 된다. 서울의 학교로 이직 후 엄재원은 평생 붓을 놓지않았다. 1978년 창립한 ‘재경 충북작가전’에도 30여 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작품을 출품하였다.

엄재원 소년상(충북문아관발행 도록).

 

엄재원은 1972년 목우회전에 에 입선한 이후 정통적 구상회화의 화풍을 지켜왔다. 1973년부터는 한국현대미술을 하는 교사들이 중심인 된 협회인 ‘신기회(新紀會)’에 가입하였다. 신기회는 1957년 5월에 창립한 오래된 단체로, 반(反)국전의 기치 아래 현대미술을 표방하는 재야단체들과 같이 출발해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적인 궤를 같이해왔다고 볼 수 있다. 엄재원과 같이 활동한 신기회 멤버 중 충북출신 화가로는‘엄재원, 신범수, 민병각, 장부남’ 등이 있다. 엄재원은 신기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정년 이후에는 평생 꿈인 미술의 길을 찾아 더욱더 작업에 몰입하였다.

 

안영일 화백.

 

3. 미술인 안영일(1934~2020.12.12.)



화가 안영일(1934~2020)은 개성에서 서양화가 안승각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했으며 일본에서 10여년을 자랐다. 1943년 청주상업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 청주에 정착했다. 청주사범부속초와 청주사범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소문나 안영일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2회 국전에서 특선을 받았으나 고등학생 신분이 드러나 입선으로 다시 내려졌다는 일화가 있다.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고교교사로 근무하다가 사표를 내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걸으며 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안영일 작-Water ALB-15A(충북갤러리).

 

1966년 미국으로 이주,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후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나, 갤러리와 지인 콜렉터의 소송에 휘말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10여 년의 바다낚시를 하면서 안영일은 ‘Water 시리즈 작품’으로 영원한 예술적 자산을 얻게 된다. 2017년 미국 서부 지역 내 최대 규모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미술관) 전시는 안영일을 세계 현대미술 최고 정상의 작가로 인정받은 계기가 되었다. 국내전시를 앞두고 2020년 12월 12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이서지 인물

 

4. 미술인 이서지(1934~2011.10.15.)



풍속화가 1인자인 이서지(李瑞之)는 1934년 청주시 지북동에서 출생했다. 청주상고와 청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상경, 신문사 편집기자로 근무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그는 미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삼십대 후반인 1970년대부터 단원 김홍도과 혜원 신윤복에 뿌리를 둔 전통 풍속화를 그리면서 우리나라 풍속화의 1인자가 되었다.

이서지 오일장.

 

춘하추동 사계절의 세시 풍속, 장터 풍경, 어머니를 주제로 한 그림 등 한국의 정서가 깃든 해학적이면서도 역사적 기록이 될 풍속화들을 주로 그려왔다. 1972년 제1회 이서지 풍속화전을 시작으로 국내전시와 해외전시 등 30여회에 걸쳐 풍속화전을 개최해왔다. 1980년대 중반에는 현대적 기법을 도입한 작품에 매달려, ‘단청(丹靑)의 현대화를 위한 전(展)’을 열면서 작품에 변화를 가져왔다. 2004년 경기 과천에 선바위미술관을 설립해 작업을 했다. 2011년 10월 1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문수 인물.

 

5. 문인 김문수(1930.4.3.~2012.11.5.)



소설가 김문수(金文洙)는 1939년 4월 3일 청주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를 나와 동국대 국문과에 진학했으며 동국대 재학중이던 196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이단부흥’(異端復興)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주요 작품으로 ‘증묘’(蒸猫), ‘육아’, ‘고독 지옥’, ‘어둠의 저쪽’, ‘그 여름의 나팔꽃’, ‘끈’, ‘종말’ 등이 있으며 장편 ‘환상의 성’, ‘바람과 날개’ 등 많은 중·단편을 발표했다. 김문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갈등, 도시 서민들의 삶의 의식과 고뇌를 주로 다뤘다.

김문수 소설집 만취당기.

 

1989년 ‘만취당기’로 2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외에도 현대문학상(1975) 한국일보문학상(1979) 한국문학작가상(1986) 조연현문학상(1988) 오영수문학상(1997) 대한민국문학예술상(1999) 등을 많은 상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 경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까닭은, 대학강의와 문학 외길만 걸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양여대 교수로 근무했으며 2012년 11월 5일 별세했다.

 

변상봉 화가.

 

6. 미술인 변상봉(194211.30.~2008.11.23.)



청하 변상봉(卞相奉)은 1942년 청주시 북일면 우산리 321번지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변윤수는 한의사로 충북 한의사협회회장을 역임했다. 변상봉은 비상초, 청주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 동양화과에서 정통 한국화 코스를 밟았다. 미술을 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던 아버지를 설득해 미술에 발을 들여놓았다. 대학 4학년 때 제13회 국전에서 특선을 한 뒤 2년 연속으로 국전에서 입선하였다.

변상봉 공-바라밀다.

 

1978년 제1회 경남도전에서 초대 작가가 된 이후 경남 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부터 창원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경남 한국화가협회 창립회장, 마산 미술협회회장, 경남 선면 예술가협회 창립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 및 운영 위원, 경상남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심사 및 운영위원 등 전국의 각종 미술 대전 운영 위원과 심사 위원, 경남 국제조각심포지엄 조직 위원장, 동서미술상, 문신미술상 운영 위원을 맡기도 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마산 대동제 공동 대회장을 맡았다. 수묵누드화가 누리꾼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개인전을 5회 개최했고, 초대전 및 단체전 등에 310여 회 출품하였다. 2003년에는 청하 변상봉 채묵작업 40년 기념 도록을 출간하기도 했다. 2008년 11월23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이들 이외에도 기억해야할 청주의 작고예술인들이 많다.

▲이종환(李鍾煥, 1924~2015.2.23.)은 청주시 강서면 지동 출신으로 청주농악 상쇠로 1992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정 박노수(藍丁 朴魯壽, 1927~2013)는 연기출신이지만 청주상고 미술부로 안승각에게 그림을 배우고 서울대로 진학한 한국화 1세대의 대표로 꼽히는 화가다. ▲소암 이재호(素巖 李在鎬, 1927~2008)는 청주시 내수읍 북이면 용계리에서 태어났으며 청주고보(현 청주고)와 홍익대 미술학부를 졸업한 정통 한국화 화가로 인천교육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이중각(李重珏)은 1917년 소파 방정환이 조직한 ‘청년구락부’의 회장으로 1918년 동인지 <신청년>을 펴냈으나 1923년 3월 의혈단 운동으로 고문을 받고 자살하였다. ▲이설우는 청주상고 교사로 1957년 1월 신동문 등과 <충북문화예술인협회>를 발기했다. 이 단체는 청주 문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진국(1928~2018.5.16.)은 청주에서 교편생활로 많은 제자를 배출했으며 후기 인상파 세잔느 화풍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김상억(金尙憶)은 1923년 함남 문천 출생으로 청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195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김영수는 1933년 경북 상주 출생으로 청주대학교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청석학술상, 한국문화평론가협회상, 충청북도 문화상(예술부문) 등을 받았다. ▲김영진(1937~ 2016)은 괴산군 청안 출생으로 청주대 교수를 지냈으며, 청주대 박물관장 시절 청주흥덕사지발굴조사를 지휘했다. ▲임상묵(1933.8.24.~ 1998.5.30)은 청주교대와 충북대 교수를 지낸 공예작가이다. ▲오국진(吳國鎭) 1944.7.15.~2008.3.24.)은 청주시 현도면 달계리에서 출생,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명예보유자로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