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세이/삼백 리
김묘순 문학평론가
[동양일보] 예식장을 다녀오는 길이다. 제자 녀석이 장가가는 날이다.
모처럼 화들짝 갠, 봄볕이 좋아 걷기로 했다. 먼 길로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냉이가 있다. 꽃다지도 눈에 띈다. 구슬쟁이도 탐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콩덕석도 장구잽이도 봄볕이 좋은지 반질반질한 잎들이 빛난다. 봄나물 이름들이 예쁘다. 사실 이들 이름의 유래나 이유는 모른다.
밭 가장자리에 봄나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촌스러운 아니 요즘 사람들이 기억해 내기 어려운, 쉽게 함부로 지어진 듯한 이름들. 사실 이 콩덕석이나 장구잽이의 표준어는 무엇인지 모른다. 어릴 적 할머니나 친구들에게 들은 이름이다. 그 이름들을 지금 기억해 낸 것뿐이다.
밭 가장자리로 들어가 할머니께서 알려줬던 꽃다지를 뜯는다. 할머니께서 늦둥이 고명 손녀딸을 무릎에 누여놓고 푸념처럼 하시던 말씀이 봄바람을 휘젓고 지나간다. 봄바람 사이로 며칠 전 만났던 노신사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요양원’의 명암이 조명되기도 하고, 장난기 섞인 호기로운 이야기들도 들려주신다.
명문 고등학교 시절부터 흥겹게 학교 자랑에 나서시더니 젊은 시절 제천의 OOO, 음성의 ⃤⃤⃤⃤ ⃤ ⃤ ,충주의 등 여러분의 등장인물이 호명돼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 그 중, 총기 좋으신 분은 노신사의 “제천의 OOO” 대목에서 “단양!”이라고 짧고 단호하게 수정하신다. “아! 단양! △△△” 이렇게 정정하시며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 박장대소하는 이야기 사이로, 치매기가 약간 든 듯한 부인을 매일 삼백 리씩 드라이브를 시켜드린다는 노신사의 말씀.
보은으로 상주로 돌아서, 영동으로 무주로 금산으로, 또 미원으로 청주로 노선을 정하여 매일 삼백 리씩 드라이브를 떠나신다던 노신사의 이야기. 노신사의 사모님은 치매 중에도 드라이브 가시는 것을 좋아하신단다.
노신사는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난 후 행여 후회하게 될까 싶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삼백 리의 여정을 팔순이 넘은 나이에 매일 운전을 나서는 노신사. 애잔하게 가슴을 파고들던 이 슬픈 이야기.
울진 않았지만, 탱자를 먹었을 때처럼 가슴 전체가 시디시다.
목이 따갑고, 눈도 시다.
“후회”라는 단어의 울림이, 즐겁다고만 생각되던 ‘드라이브’와 함께도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큰 울림이다.
냉이, 꽃다지, 콩덕석, 장구잽이를 도구 없이 맨손으로 한 줌 뜯었다.
삼백 리 이야기와 나물 이름들을 논고랑에 모심듯 꾹꾹 꽂아놓고 집으로 돌아온다. 삼백 리 이야기 속에서 가까운 미래가 꾸물거린다.
집으로 돌아와 봄나물을 씻고 데쳐 깨소금 뿌려 무친다. 딱 한 접시다. 접시 사이로 도서관에서 돌아와 맛있게 먹을 이를 그려본다.
흐뭇하다. 아니, 다시 “삼백 리”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서글퍼진다.
“이 나물을 먹어줄 사람이 없어진다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물을 벅벅 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