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우 중원대교수·동양화
“내 꿈은 ‘황창배 예술촌’, 마을주민과 함께 실현하고 싶어”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
지난 14일 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초에서 故 황창배 화백을 기리는 8회 ‘백봉 어린이 그림잔치’가 열렸다. 이 행사는 생전의 황 화백이 백봉리에 작업실을 만들고 창작에 전념하면서 백봉초 어린이를 위해 1~6회 개최한 ‘잔치’로, 황 화백 사후 1회 더 열렸다가 멈춘 것을 십수년만에 부활시킨 것.
학생과 학부모, 미술계 인사 등 150여 명이 함께한 이날, 관람객이 모여들기 시작한 시간부터 행사가 끝난 마무리 뒤처리까지 “이리 오세요”, “저리 가세요”를 외치며 행사를 진두지휘한 사람, 이근우(59·사진·☎043-830-8820) 중원대 교수.
황 화백의 부인인 이재온 황창배미술관장이 황창배기념사업회의 실질적인 주역이라고 소개한 인물로, ‘백봉어린이그림잔치’를 부활시킨 주인공이다.
열흘만에 다시 만난 이 교수는 잠이 덜 깬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중원대가 소재해 있는 괴산 지역의 ‘인물’을 찾아내 연구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로 인한 지역 문화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 요즘은 남양주 본가에도 가지 못하고 교내 숙소에 머무르며 2014년부터 몰두해온 단원 김홍도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는 “조선 당대 최고의 도화서 화원이며 괴산군 연풍현감을 지낸 김홍도를 연구하다가 황창배 화백도 알게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황 작가께서 삶의 마지막 10년을 아무 연고도 없는 백봉리에 내려와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셨다는 걸 알고 곧바로 아틀리에를 찾았다”며, 그때 “주인은 없지만 선생님의 손때가 묻은 붓이나 물감, 먼지 쌓인 작업대를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파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테러’이고 ‘이단아’라고 불렸지만 선생님은 창작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를 보여줬고 그로 인해 후배들이 ‘어떻게’ 창작에 임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남겨준 당대 최고의 한국화가였다”며 “이런 귀한 공간(자료)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스러지게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황창배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선양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김홍도는 대가임에도 사망연도조차 추정일 뿐, 묘도 없고 뿌리인 도화서 자료도 없어 힘들게 보전작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틀리에도 있고 묘도 있는 황 작가에 대한 보전 선양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후배 작가들의 ‘직무유기’라는 것.
이 교수는 “내 꿈은 ‘황창배 예술촌’을 만드는 것이고, 내가 하는 일은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명분 쌓기’ 작업”이라고 말한다.
‘명분 쌓기’ 작업의 영순위는 ‘마을주민과의 연계’라고 했다.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고 알리고 싶어하는 곳이 돼야 하는데 백봉초에는 이미 1996~2001년 황 작가의 마지막 10년에 대한 사진자료가 잘 정리돼 있고, ‘백봉어린이그림잔치’를 부활시켜 작은 산골마을에 사람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초석은 다져졌다는 생각이다.
또 선생을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백봉리 아틀리에를 찾아 차 한잔하며 쉬어갈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고 지자체 지원받아 상근직원도 두고, 유족의 동의 얻어 백봉초와 아틀리에 진입로를 넓혀 조령산 숲에 ‘김홍도 길’이 조성된 것처럼 ‘황창배 길’도 만들고, 보도자료는 많지만 연구논문은 많지 않은 황 작가 관련 책도 내겠다고 했다.
이 교수는 “차근차근 명분을 쌓다보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마을에 생기가 넘쳐나고 마을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기념관이 건립되고 ‘황창배 예술촌’도 생길 것”이라며 “그때쯤 되면 마을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연극공연도 즐기면서 ‘고흐방’, ‘피카소방’, ‘르느와르방’ 등에서 머무르며 다양한 체험도 하는 등 괴산 지역 자체가 ‘예술의 산지’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1965년 경기도 여주 출생인 그는 한성대 미술학과(동양화 전공), 국립대만사범대미술대학원 졸업하고 중국 남경예술학원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만 의난현 예술학회 고문과 동서미술문화학회·한국동양예술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박현진기자 artcb@dynews.co.kr
<고 황창배 작가 작업실 사진=이근우 교수 제공>